한국일보

전통 오락

2003-12-18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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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람들은 노래하고 춤추며 잘 노는데 미국사람들은 왜 그렇지 못하느냐? 면서 그녀는 나에게 묻는다. 그녀의 질문에 나는 마땅한 대답이 없다. 한인교회에서 두 시간 동안 크리스마스 탤런트 쇼를 보고 집에 돌아가면서 차안에서 나눈 우리들의 대화이다.

어른들이 분장을 하고 이상한 옷을 입고 연속극 주인공들을 흉내내며 공연을 한다. 백 명도 넘는 어른들이 서로 구경거리가 되어 웃고 즐기는 모습은 아직도 내게는 생소한 광경이다. 장기자랑을 하며 즐기는 한인 성도들을 보면서 나는 내가 전에 다니던 미국교회 성도들을 떠 올려 본다. 온 교인이 그룹별로 나와서 촌극을 하거나 노래를 부른다? 남 앞에서 실수를 하고 실수로 인해 함께 웃는다는 것은 상상 할 수 없는 일이다.

한국교회에서 처음 일하는 미국인 전도사 유진은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 촌극의 괴이한 상황이 파악되지 않는지 어깨를 들썩이며 나에게 설명하여 달라고 신호를 보낸다. 촌극의 내용은 대강 이해를 할 수 있지만, 나도 한인 성도들이 폭소를 터트리는 펀치 라인을 알아채지 못하여 뒤늦게 설명을 듣고 나서 캐치하는 형편이라 별로 유진에게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 농담을 듣는 외국인이 원어민과 동시에 웃을 수 있을 때 언어를 마스터하였다고 할 수 있다. 나의 한국말이 이런 수준에 이르려면 아직도 멀다.


마치 생 이빨이라도 빼는 것처럼 억지로 모아진 여섯 명의 영어 그룹 멤버들이 멋쩍은 듯 무언극을 하며 행사에 참여하였다. 한인 1세들이 그처럼 재미있게 참여하며 즐기는 탤런트 쇼를 영어 그룹은 멋쩍게 방청하면서 별로 즐기지 못하는 것이었다. 영어부 멤버들이 젊어서인지, 아니면 한국말이 그들의 원어가 아니어서인지, 아니면 그들이 한국문화보다는 미국문화에 길들여 진 탓인지, 한인 1세들과 달랐다.

눈에 띄는 1세와 2세의 오락정서 차이를 보면서 내가 영어부 학생들 나이쯤 되던 오래 전 한국에서 있었던 일이 생각난다. 한국친구들과 술집이나 음식점에 갈 적마다 노래를 하며 놀아야 하였다. 한국친구들과 함께 어울리면서 나 자신이 우스꽝스럽게 보이는 것 같아 멋쩍었던 것을 기억한다. 미국인 손님으로 초청된 내가 그들을 위하여 노래하여 주기를 원하였다.

한국 노래 한 곡을 외워 노래를 시킬 적마다 똑 같은 노래를 불렀다. ‘엄마야 누나야’ 라는 노래이다. 노래 부르는 것을 즐기지 않았지만 한국사람들과 섞여 흥을 맞추기 위하여 ‘엄마야 누나야’를 수 백 번도 더 불렀다.

탤런트 쇼에 관한 대화가 진전되면서 우리 한국사람들이 꼭 아프리카 르완다 사람들처럼 신나게 노래하고 잘 노는 것 같다라고 아내가 코멘트 하였다. 한인 1세들이 잘 놀지 하며 나는 영어부 멤버들을 떠올리며 정정하여주었다.

전통사회에서 자란 사람들은 자기들끼리 서로 즐길 줄을 안다. 한인 구세대들이 장기자랑을 하며 서로 즐기며 웃는 것처럼 아프리카 사람들은 두서너명 모이면 서로 웃기면서 즐긴다. 스스로 즐길 줄 아는 오락은 미국 젊은이들에게는 잃어버린 예술이다.

21세기에 미국에서 살고있는 아이들은 텔레비전이나 인터넷에서 넘쳐 흘러나오는 대중 오락으로 스스로 즐길 줄 알고 남을 즐겁게 하여 주는 오락을 잃어버린 것이다. 텔레비전이 나오기 전에, 그리고 음악이 녹음되기 전에, 그리고 수천 가지의 전자게임이 있기 전에 우리는 서로 함께 하며 즐겼다.

만약에 우리가 노래를 듣고 싶으며, 그룹 중에 한사람이 노래를 불러 즐겁게 하였다. 만약에 우리가 웃고 싶으면 한사람이 익살꾼이 되어 즐겁게 하였다. 서로를 즐기는 것이 전통적인 오락이다. 이와 같은 전통적인 오락이 미국에서 사라진지 오래이다.

우리교회 한인성도들이 웃고 노래하며 스스로 즐길 줄 아는 것을 보는 것이 즐거운 반면, 그들의 아들과 딸들은 이러한 전통오락의 선물을 잃어가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니 아쉬워진다. 한인 구세대들과 함께 장기자랑 쇼와 같은 한인교회 전통이 사라질 날이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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