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고어의 왕 만들기

2003-12-13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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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크라우트해머/ 워싱턴포스트

고어가 하워드 딘에 대한 지지를 표명함으로써 딘은 사실상 민주당 대통령 후보 지명을 따냈다. 그럼으로써 민주당의 아웃사이더였던 딘은 노조와 소수계 등 당권의 중심 세력과 연계를 갖게 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고어의 지지는 이보다 상징적인 의미가 더 크다. 이번 캠페인의 주테마는 민주당 기층의 에너지와 분노다. 그것이 별 볼일 없는 무명 인사였던 버몬트 전 주지사가 민주당의 선두주자가 된 까닭이다. 그는 이 분노를 붙잡아 자기 것으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부시 스타일이 온건한 점을 생각한다면 분노는 이상하게 여겨질지 모른다. 민주당원들은 2000년 그를 증오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은 그의 당선이 정통성이 결여된 것이라 믿고 있기에 그를 지금 증오한다.

민주당 기층은 이로 인해 과거 어느 때보다 흥분된 상태다. 바로 그 때 그 범죄의 피해자이자 증인인 고어가 나타난다. 딘은 할렘에서 열린 지지선언 발표 행사에서 고어를 선출된 미국 대통령이라고 소개했다. 이에 고어는 딘이야말로 부시를 축출하고 2000년의 배신을 바로 잡을 인물이라고 선언했다.

대통령직을 도둑맞은 인물로서 고어의 권위는 그의 이번 지지의 의미를 각별하게 만들고 있다. 고어로 인해 발생한 분노를 타고 인기를 얻은 딘보다 더 고어의 지지를 받기에 합당한 인물은 없다.

고어의 입장에서 봐도 이번 지지 선언은 일품이었다. 그전까지 그는 ‘새터데이 나잇 라이브’에나 출연하는 등 별 볼 일이 없었다. 여기저기서 가끔 연설을 하거나 언론학 교환교수 노릇을 잠깐 하기는 했지만 별로 어울리지 않았다. 예상치 못했던 이번 극적 지지로 그는 정치판의 주역으로 나서게 됐다.

그가 딘이 승세를 굳힐 때까지 두어 달 기다렸다면 지지 선언을 해도 별 의미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첫 번째 표가 던져지기 전 그를 사실상 지명자로 만듦으로써 그는 킹 메이커가 됐다.

왕이 되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킹 메이커가 되는 것도 그에 못지 않게 좋은 일이다. 그는 베이커가 그랬던 것처럼 딘 행정부의 원로 정치인이 되려 하고 있다. 고어가 원하기만 한다면 국무장관이 되는 것쯤은 ‘따 놓은 당상’이다.

그러나 이는 딘이 승리했을 때만 유효하다. 정당은 한번이라도 진 정치인에 가혹하다. 딘이 이번에 져 부시가 정통성을 회복할 경우 고어는 다시는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

민주당 경선은 끝난 것일까. 돌발사태가 없는 한 그렇다. 그는 전국 여론 조사에서 처음으로 선두를 달리고 있다. 그러나 만약 아이오와에서 게파트에게 지거나 뉴햄프셔에서 작은 표 차로 이길 경우 언론은 딘의 추락을 주요 뉴스로 다룰 것이다. 1992년 클린턴은 뉴햄프셔에서 송가스에게 8포인트 차로 지고도 ‘컴백 키드’라는 별명을 얻었다. 지명전에서 예상치 못한 사태가 벌어질 경우 딘은 엄청난 타격을 입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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