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조기 공식지지 문제 있다.

2003-12-11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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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 고어가 9일 하워드 딘 전 버몬트 주지사를 민주당 대선 후보로 공식 지지함으로써 딘은 승리의 기쁨에 휩싸였다. 그럴 만한 일이다.
9갈래로 갈라져 싸우고 있는 2004년 대선 민주당 후보 지명전에서 고어의 공식지지는 현재로서 최고위급의 지지이기 때문이다. 예비선거 개막 6주전, 민주당 전당대회 7개월 전에 이런 지지를 얻음으로써 딘은 유권자들이 단 한 표도 던지기 전에 선두자리를 공고히 했다.
딘으로서는 좋은 일이 될 것이다. USA투데이/CNN/갤럽의 새 여론조사를 보면 지지도가 다른 후보들에 비해 껑충 뛰어 올랐다.
하지만 고어 전 부통령의 공식 지지는 다른 측면을 가지고 있다. 예비선거 일정이 단기간으로 압축되면서 당 내부 인사들의 영향력은 커지고 유권자들의 목소리는 희생되는 현상이다. 고어도 조기 공식지지 선언 배경에는 당내 경선을 빨리 끝내자는 의도가 있었음을 시인했다. 고어는 11월에 부시 대통령을 패배시킬 가장 강력한 후보로 딘을 꼽으며 딘을 중심으로 민주당이 단결할 것을 촉구했다.
예비선거 일정이 당겨지면 당의 후보가 조기에 가시화된다는 것은 이미 많이 언급돼 왔었다. 40년 전, 예비선거는 3월부터 6월에 걸쳐 퍼져 있었다. 그래서 미 전국의 유권자들은 후보들을 평가할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그러나 점점 많은 주가 예비선거를 앞당겨 지명전에 영향력을 미치려 들면서 예선 일정은 단기간에 몰아졌다.
올해는 특히 그 현상이 심하다. 1월에 아이오와와 뉴햄프셔 예비선거가 끝나고 나면 하와이부터 메인에 이르는 33개 주의 예비선거가 7주안에 모두 실시된다. 예비선거 일정이 늦게 잡혀있는 7개 주는 아예 선거를 취소했다. 그때쯤이면 민주당 후보는 사실상 결정되고 부시는 적수 없이 단독후보로 나서고 있을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첫 번째가 되려는 욕망은 공식 지지에서도 나타난다. 고어의 지지를 이어서 최소한 24개 노동조합들이 지지 후보를 공식 발표했다. 전통적으로 마지막 순간까지 후보들을 이리 재고 저리 재던 노조로서는 이례적인 일이다.
조기 예비선거와 마찬가지로 조기 공식지지는 후보 선택의 힘을 소수의 손에 몰아주는 결과를 낳는다. 공식지지는 후보들에게 돈과 조직을 몰아다 주고, 돈과 조직은 일찌감치 후보 지명을 얻어내는 데 필수적이다. 그 결과 수백만의 유권자들은 목소리를 낼 기회를 상실 당하고 만다.
예비선거가 생긴 것은 본래 소수의 당내 인사들이 후보를 뽑던 시절에서 벗어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런데 이제 미국은 그 시절로 되돌아가고 있는 것 같다.
민주당만 탓할 일도 아니다. 부시 선거진영은 사상 유례가 없는 2억달러의 기금을 모금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민주당으로서는 당내 경선을 빨리 마무리짓고 본선거 준비로 들어가고 싶은 것이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예비선거를 서두르는 것은 당내 인사들의 목적에는 부합될 지 몰라도 유권자들의 이해에는 도움이 안 된다. 후보 경선 과정에서 유권자들의 몫을 잘라내 버리기 때문이다.

USA투데이 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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