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미군 사망엔 휴일이 없다

2003-12-03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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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시 대통령과 힐러리 상원의원이 추수감사절에 바그다드 공항에서 미군들과 시간을 보내는 동안에도 미군은 계속 죽어갔다.

두 정치인의 방문은 ‘사진촬영 올림픽’ 경쟁에 다름 아니다. 전쟁완수를 공표하는 사진촬영 이벤트 이후 거의 1년이 지나서야 미국의 지도자들은 총탄 세례를 받지 않고 ‘해방된 이라크’ 땅을 밟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들 정치인이 받은 물샐틈없는 신변보호는 미군과 이라크에 파병된 연합군에게는 제공되지 않고 있다. 지난 11월 한달간 연합군 104명이 사망했다. 이는 10월보다 43명이 많은 수치이며 치열한 교전이 있던 지난 4월의 희생자보다도 많다.


지난 토요일 미 대변인은 미군에 대한 공격이 감소하고 있어 일이 잘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하지만 바로 다음날 미군 차량들에 대한 대규모 공격이 있었고 치열한 교전이 이어졌다. 이번 교전에서 다행히 미군 희생자는 없었다. 그러나 현장을 취재한 기자들에 따르면 미군은 이번 전투에서 막강한 화력을 바탕으로 무차별적인 공격을 감행해 무고한 시민들이 다수 사망했다.

어쨌든 한 때 미국과 전략적 제휴관계에 있던 이라크 수니파들도 미군의 행동에 적개심을 품고 있으며 그 수위가 최고조에 달하고 있다. 부시 대통령이 미군에 저항하는 세력을 살인자, 테러범 등으로 뭉떵거리는 것은 오히려 이라크 국민들의 민족주의적 정서와 종교적 단합 움직임을 부채질할 뿐이다.

미국이 후세인 지지세력인 수니파보다 시아파에게 우호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지만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변할 수 있으며 이는 이라크 정정 불안을 악화시킬 것이다. 미국은 과거 이란 등지에서 시아파들과 적대관계를 취했었다. 그래서 이라크에서 시아파에게 선뜻 권력을 이양하지 못하고 있다. 정국이 너무 불안정하다.

총선이 실시되면 수적으로 많은 시아파가 정권을 잡을 가능성이 크고 그렇게 되면 미국이 구상하는 세속적 의미의 민주주의는 어렵다. 이라크에 신정이 뿌리내리게 될 것이다. 전쟁 명분으로 내세울만한 증거를 찾지 못한 부시 대통령으로서는 미국의 국익에 반하는 행동을 취하지 않을 정권을 세우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글쎄다. 더욱 더 수렁에 빠져들 뿐이다.

대안이 없다고 강변하지 말라. 부시가 선제공격을 하기 전에 이라크 무장해제에 노력해 온 유엔안보리에 넘기면 된다. 유엔의 깃발아래 진정한 평화유지군이 나서야 한다. 여기에 미군이 일원으로 들어가면 된다. 지금처럼 일부 국가의 동참을 ‘연합군’이라고 무리해서 부를 필요도 없다.

유엔 평화유지군은 이라크 국민들로부터 의심을 덜 받을 것이다. 그러나 이는 부시의 일방주의 철회를 전제로 한다. 미국이 초강대국이라고 해도 지구촌 사태를 모두 관장할 수는 없다. 또 이 것이 용납되지도 않는다.

지금과 같은 노선을 견지하는 것이 미국의 애국심을 부추길 수 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지만 부시의 마지막 사진촬영 이벤트는 대통령을 환영하는 군중들을 배경으로 하기는 힘들 것이다. 오히려 대통령이 탄 헬기를 추적하는 성난 군중들의 장면이나, 놀란 18세 미군이 이라크 시위 군중을 향해 발포하는 장면이 현실화할 공산이 크다.

스스로 옳다고 생각하는 자칭 선구자들처럼 우리는 이교도의 영혼을 구제할 구원자임을 자칭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행동이 결국 우리 자신의 정신을 파괴한다는 점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로버트 쉬어/LA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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