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엉터리 이민정책

2003-11-27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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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이민정책은 워낙 엉터리라 각 커뮤니티마다 불합리한 현실에 대처하느라 곤욕을 치르고 있다. 그 가장 대표적 예가 불법체류자에게 자동차 운전면허를 주느냐를 놓고 벌어지고 있는 논란이다.

원칙적으로 따지자면 정부가 신분증으로 사용될 수 있는 카드를 이론적으로는 추방돼야 할 사람에게 준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그러나 지금 미국 내 불법체류자 수는 70만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사법 당국은 이를 색출하려는 진지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있으며 정치인들도 이들이 합법적으로 일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많은 전문가들이 고속도로의 안전운행을 위해 이들에게 운전면허를 주는 안을 지지하고 있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지금 많은 불법체류자들은 면허증도 보험도 없이 차를 몰고 있다. 이들이 제대로 차를 몰 수 있는 기술을 익히고 보험을 들도록 하는 것은 모두에게 이익이다. 이들에게 운전면허를 주자는 안은 LA 경찰국장인 윌리엄 브래튼, 샌프란시스코 셰리프, 가주 소방대원 등 폭넓은 지지를 받고 있다.

LA 상공회의소와 가주 보험회사도 이를 찬성하고 있다. 지금처럼 아무런 통제 없이 방치하는 것보다는 이들에게 면허를 줘 규제하는 것이 옳다는 생각이다.

아놀드 슈워제네거 가주 지사는 이런 소용돌이의 한 가운데 놓여 있다. 슈워제네거의 전임자인 데이비스는 이를 극렬 반대해 왔다. 그러나 막상 소환위기에 놓이자 납세자 번호만으로 면허를 받을 수 있는 법에 서명했다.

그러나 이는 라티노 유권자의 표를 얻는데 보탬이 되기는커녕 대다수 가주민을 분노케 하는데 그쳤다. 이제 가주 의회는 슈워제네거의 요청에 따라 데이비스가 서명한 운전면허 법안을 폐기하려 하고 있다. 공화당 보수파들은 그러지 않을 경우 데이비스를 소환한 것처럼 주민투표에 부쳐 이 법을 무효화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이 법 반대자들 주장대로 불법으로 미국 내에서 살고 있는 자들에게 비행기 탑승 때 신분증으로 사용될 수 있는 운전면허증을 내주는 것은 잘못일 수 있다. 슈워제네거는 신원조회 등 안전 장치를 마련할 경우 이들에게 운전면허를 주는 것을 수락하겠다고 밝혀 이 법 철폐에 대한 가주 의회의 동의를 얻어냈다.

의회가 데이비스가 서명한 불법체류자 운전면허법을 폐기한 후 슈워제네거는 이미 가주에서 차를 운전하고 있는 불법체류자들이 면허증을 취득할 수 있는 적당한 타협안을 내놓을 필요가 있다. 그리고는 멕시코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다른 주 주지사와 주의원들과 힘을 모아 연방 의회에 이민정책 전반에 걸쳐 제도 개선을 요구해야 할 것이다.

(뉴욕타임스 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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