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화장하는 남자들

2003-11-20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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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으로부터 들려오는 뉴스거리는 늘 흥미진진하다. 몇 주 간격을 두고 새롭고 특이한 것이 한국에서 유행하고 있다는 뉴스를 미국 주류신문을 통하여 읽을 수 있다. 최근에 들려오는 특이한 유행은 한국 남자들이 화장을 한다는 뉴스이다. 남자들이 화장을 한다는 기이한 기사가 미국 주류신문에 보도되었다. 한국 남자들이 남자용 향수나 땀띠 가루를 바르는 그런 가벼운 정도의 화장이 아니라 얼굴에 파운데이션을 바르고 마스카라를 칠하는 등 짙은 화장을 한다는 것이다.

한 남자가 옆에 있는 동료의 얼굴을 자세히 살피며, 참 얼굴이 보기 좋네요. 무슨 화장품을 사용하셨지요?라고 조언을 구하는 모습을 담은 사진과 함께 요즈음 한국에서 남자화장이 유행하고 있다는 기사였다. 그 기사에 의하면 한국에서 요즈음 직장 구하기가 힘들어지면서 직장을 얻기 위해서 모든 수단과 방법이 동원되면서 젊은 남자들 사이에 화장이 유행하게 되었다고 한다.

화장처럼 번거롭고 수고스러운 일을 왜 남자들이 자청하여 유행시키고 있는지 궁금하고 놀랍다. 나는 아침에 일어나서 세수하고 수염 깎는데 몇 분 정도면 하루를 맞이하는 얼굴이 준비가 되는데 아내는 나보다 몇 배나 긴 시간을 소비하며 하루를 맞이할 얼굴 준비를 한다. 분바르고 연지 찍고 입술 칠하는 등 얼굴을 두드리고 다듬으며 수고하는 과정을 보면서 화장을 하지 않아도 되는 축복에 감사하곤 한다. 그런데 내가 즐기고 있는 이 작은 축복을 한국 남자들이 빼앗으려는 것은 아닌가 하는 염려가 생긴다.


남자들이 화장을 하는 것을 제일 기뻐할 사람들은 화장품 회사일 것이다. 지금까지는 성인들의 절반 인구인 남자들이 얼굴에 분을 바르거나 마스카라를 칠하지 않아 화장품을 사지 않았다. 그러나 한국 남성들이 이러한 전통을 바꾸고 있는 것은 아닐까. 메리 케이나 레블론 같은 화장품 회사 증권을 사둘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다.

화장에 집착하는 사람의 고생을 몇 년 전 아프리카 단기 선교활동 중에도 보았다. 팀 멤버 중 화장을 짙게 하던 한국 여자 분이 있었는데, 그 사람은 하루 일과 중 상당한 시간을 화장하는데 소비하였다. 은색 화장품 케이스가 어디를 가나 그녀와 함께 동행하였다. 화장 전과 화장 후의 그녀의 모습이 너무도 달라서 우리는 그녀의 화장 케이스를 요술상자라고 불렀다.

먹을 물도 없는 곳에서 황토 흙먼지를 뒤집어쓰고 살아야 하는 그 곳에서 화장은 생각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었다. 밥은 굶어도 화장하지 않고는 새 날을 맞이할 수 없다는 그녀가 아프리카 선교사로 간다고 하였을 때 염려가 되었다. 결국 그녀는 몇 달을 채우지 못하고 아프리카 선교를 그만 둔 결정에 나는 놀라지 않았다.

오래 전에 나도 화장을 한 적이 있다. 스물 두 살 때 나는 작은 중학교로 교생실습을 나갔다. 하루는 수업 중에 버릇없고 당돌한 여학생이, 미스터 포먼, 얼굴이 번질번질 하네요 하면서 수업을 중단시키려 하였다. 일부러 나를 곯리기 위한 그녀의 코멘트를 나는 못들은 척하며 수업을 계속하였다. 그 다음날 학교 가기 전에 나는 땀띠 가루를 얼굴에 뿌려 번질거리지 않도록 문질렀다.

땀띠 분을 바른 얼굴로 나는 수업을 진행하였다. 같은 여학생이 수업 중에 또 미스터 포먼, 얼굴이 왜 그렇게 하얗지요? 하며 물었다. ‘학생과 선생’ 게임에서 이 경우에는 학생이 선생을 이긴 것이다.

그 후부터 나는 내 얼굴에 신경 쓰지 않기로 하였다. 세수하고 수염 깎고 가끔 선스크린을 바르는 것이 전부이다. 한국에서 남자들이 화장을 한다 할지라도 나는 내가 거울 앞에 앉아서 마스카라를 칠하고 있는 모습을 상상할 수가 없다. 좀 우울한 생각이 들기는 하지만 아마도 이 다음에 내가 분을 바르고 화장을 한 모습으로 사람들을 대할 때가 있을 것이다. 그때가 바로 나의 장례식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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