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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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치는 람보가 아니다

2003-11-11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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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에서 포로로 잡혔다가 구출된 제시카 린치 일병은 미군이 적진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전황 역전의 메신저와 같았다. 적진에서 극적으로 탈출에 성공함으로써 ‘19세의 람보’가 됐고 국내 분위기도 바꿔 놓았다. 하지만 그녀에 대한 얘기가 소설과 같은 꾸며낸 것임이 밝혀지면서 부시 행정부의 상징조작과 언론의 무분별한 보도가 도마 위에 올랐다.

전쟁 승리선언 후 계속 미군이 죽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린치 일병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포로생활을 중심으로 다룬 ‘나도 미군이다’라는 책 출간이 그 한 예이다. TV 방송에도 출연할 계획이다. 월마트에 취직하려다 실패해 군에 입대한 린치 일병의 이야기는 단순히 ‘전쟁 영웅’에 대한 무용담이 아니라 우리가 치르고 있는 전쟁에 대해 시사점을 던질 것이다.

NBC TV가 방영할 ‘제시카 린치 구하기’는 가능한 사실에 근접하도록 제작됐다. 린치를 존 웨인으로 묘사하지 않고 은밀히 진행된 작전의 일환으로 중요하지 않은 임무를 띤 병사로 다뤘다. 이 극은 미국의 오만함에 경종을 울리는 현실주의적 접근을 시도했다. CBS TV가 이에 맞서기 위해 린치보다 몇 주전에 생포됐다 구출된 병사의 얘기를 다룬 극을 준비했지만 린치 얘기와는 경쟁이 되지 않을 것이다. 린치의 극과 대립각을 이룰 것은 바로 지금 이 순간에도 미군이 죽어가고 있는 이라크 전장 자체다.


치누크 헬기가 격추돼 미군 16명이 사망한 사건은 지난 93년 모가디슈에서 헬기격추로 18명이 숨진 악몽을 되살리고 있다. 린치 일병이 목숨을 바쳐 전장에서 싸웠고 구사일생으로 구출된 것을 가지고 린치 개인의 삶을 헤피 엔딩으로 묘사하고 이라크 전쟁의 어려움을 잠시 가리려 하더라도 소용이 없다. 이제 미국에서는 과연 얼마나 많은 미군이 죽어야 이 전쟁을 승리로 이끌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 곳곳에서 제기되고 있다.

국방부는 헬기 격추현장을 언론에 공개하지 않았고 부시는 린치가 생포될 당시 총격전으로 사망한 미군의 장례식에 불참했다. 보이고 싶지 않는 것과 말하고 싶지 않은 것은 철저히 봉쇄로 일관했다. 그리고 린치가 귀국해 요양하던 병원에서 치료받던 두 팔이 절단된 부상병 월터 리드에게는 아무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작금에 벌어지는 일련의 일들은 전쟁 개시 땐 우리가 주도권을 잡고 있는 듯했지만 지금은 적이 칼자루를 쥐고 있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게 한다.

프랭크 리치/뉴욕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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