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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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난 당한 여행자들

2003-11-06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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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 하던 것처럼 외출에서 돌아 와서 나는 전화 메시지를 체크하였다. 메시지 중 하나는 나의 친구가 남긴 것인데, 친구의 걱정 섞인 목소리에 무슨 문제가 생긴 것이 틀림없었다. 친구는 설명을 남기지 않고 빨리 전화를 걸어 달라는 부탁만 남겨놓았다. 나는 걱정이 되었다. 누가 아픈 것은 아닐까? 혹시 사고가 난 것은 아닌가? 별별 생각이 다 스치고 지나갔다.

전화를 받는 친구는 오후에 일어났던 일을 설명하여 주었다. 한국에서 미국을 방문하고 있는 축구선수들 일곱 명을 데리고 샌프란시스코 주변 관광을 안내하던 중에 일어난 일이다. 금문교 다리 조망대에 멈춰서 샌프란시스코 전경을 구경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한다. 일행은 금문교 사진을 찍은 후 하이웨이를 돌아서 마린 헤드랜드 쪽으로 드라이브하다가 금문교 다리 옆 파킹 장에 잠시 멈추었다. 그리고 차에서 내려 사진을 찍고 돌아왔더니 가방 일곱 개가 모두 없어진 것이다. 선수들은 소지품이며, 돈, 크레딧카드등 전부를 도둑맞은 것이다.

당황한 친구는 금문교 근처에 사는 나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나는 외출 중이었다. 다행히도 다른 미국사람이 도움을 주어 경찰에 전화를 하였지만 수십 분 동안 경찰이 오지 않아 여행 스케줄 때문에 그곳을 떠나야 했다면서 경찰서에 전화를 걸어달라고 하였다.

나는 다음 한시간을 이곳 저곳에 전화를 걸어 상황을 알아보았다. 도난을 당한 지역이 하이웨이 옆 소솔리토시 근처였는데, 소솔리토시 경찰은 하이웨이 경찰에게 알리라고 하였고, 하이웨이경찰은 국립공원 경찰에게 전화를 걸어 보라고 하였다. 아마도 사건당시 때 경찰이 빨리 나타나지 않은 이유도 관할 경찰에게 연락이 빨리 되지 않아서 인 것 같다.


친구 K로부터 도난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는 화도 나고, 창피하기도 하고, 난처하기도 하였다. 첫 번째로 도둑에게 화가 났다. 도둑질 같은 악한 행위로 남에게 피해를 입히는 사람들에게 화가 났다. 동시에 여덟 명의 한국인 관광객들에게도 화가 났다. 어찌 그리 순진하단 말인가?

친구 K의 짐작으로는 도둑이 금문교 조망대에서부터 그들을 겨냥하고 따라 온 것 같다고 하였다. 5분 정도 차를 비운사이에 잠근 차 문을 열고 짐을 꺼내 간 것을 보면 여행자들을 노린 전문도둑인 것 같다고 하였다. 현금과 신분증을 잃어버렸다는 말을 듣고, 어찌 외국을 여행하면서 중요한 소지품을 몸에 간직하지 않고 차에다 놓고 다닌단 말인가? 이 사람들은 자신들이 여행자를 노리는 도둑들에게 얼마나 좋은 손님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었단 말인가? … 사실은 범죄자들에게 화를 내야 할 것을 괜히 피해자들인 축구 선수들에게 내고 있었다.

두 번째로 나는 창피한 생각이 들었다. 나는 미국사람이다. 캘리포니아 주민이다. 미국으로 여행 온 외국인 손님들을 상대로 물건을 훔치는 미국사람이 수치스럽고 창피하였다. 나는 도둑맞은 그들에게 미국사람들이 모두 그런 것은 아니다라고 사과하고 싶다.

세 번째로는 그들이 물건의 손실로 인해 마음을 상하였을 것을 생각하니 더욱더 화가 났다. 나는 자기가 아끼던 물건을 도둑맞은 심정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 있었을 때 나는 몇 달 동안 여관에서 살았다. 내가 살던 방은 매트리스 두 개 정도의 작은 방이었다. 방 양쪽 벽은 시멘트벽이었고 앞쪽은 종이 문이 달렸고, 방 뒤쪽 벽은 뒷방과 종이 문을 사이에 두고있었다. 이 문은 못을 박아 닫혀져있었다.

한번은 주말여행을 간 적이 있다. 여행에서 돌아와서 방문을 열었더니 뒷문에 구멍이 나있었다. 새 코트랑 녹음기 그리고 테이프 등이 없어졌다. 경찰서에 보고를 하였지만 물건을 찾지 못하였다. 여관집 주인은 미안해하며 수치스러워하였다.

도둑이 든 후 며칠동안 나는 내가 좋아하던 노래가 어디에선가 희미하게 들리는 것 같아 귀를 기울이기도 하였다. 나의 상상이었을까 아니면 정말로 이웃집 사람이 내 녹음기를 훔쳐서 듣고 있었던 것일까? 지금까지도 나에게는 수수께끼이다.

30년 전에 잃어버린 내가 좋아하던 테이프를 찾을 수 없지만, 만약에 수상한 사람이 네거리 모퉁이에서 한국말 성경을 팔고 있는 것을 보면 급히 금문교 공원 경찰에게 연락하기를 바란다. 할렐루야 축구선수들이 잃어버린 성경책일지도 모른다. 선수들은 금문교에서 도둑 맞은 일을 평생 기억할 것이고 잃어버린 성경책을 내내 아쉬워 할 것을 나는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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