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책과 폭탄

2003-03-27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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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몇년 동안 나는 크리스천 라이프 선교단원들과 함께 르완다에 갔다. 도움이 필요한 아프리카 사람들을 위해 우리들은 그들의 육신과 정신, 그리고 영혼을 총체적으로 돌보려고 노력하였다. 육신을 위해서 식량과 옷을 공급하고, 정신을 위하여 책과 컴퓨터를 주었다. 영혼을 위하여 복음을 전하였다.
만약에 외국인으로서 르완다 사람들의 영혼을 이해하기를 원한다면 르완다 이곳 저곳에 산재해 있는 종족살인 기념관을 한번 정도 방문하여 볼 필요가 있다. 1994년 4월에 있었던 르완다 종족학살 사건으로 거의 100만 명의 인구가 살해되었다. 나는 두 군데의 종족살해 기념관을 방문하였는데, 그곳은 아름다운 장소가 아니다. 무시무시한 살해사건을 말없이 간증하기 위하여 시체들을 전시해 놓았다. 썩지 않게 보관하여 전시해 놓은 시체들의 모습에서 공포와 경악에 찬 그들의 마지막 순간의 참혹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수많은 죄 없는 사람들의 죽음이 다시는 되풀이되지 않아야 한다는 각오를 인류에게 상기시켜 준다.
르완다 종족학살 때 많은 크리스천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자기 생명을 희생하며 투치족 이웃을 보호하여 주었다. 그런 반면에 르완다 교회는 그들이 설교하였던 말씀을 실행하지 못하였다. 전국적으로 테러행위가 일어나고 있을 때, 많은 투치족 믿는 사람들이 후투족 믿는 사람들의 칼날을 피하기 위해 교회로 몰려들었다. 수천 명이 피난처로 찾아든 교회가 결국은 그들의 관이 된 셈이다. 크리스천 단체가 종족살해에 참여하였다는 것은 정말로 수치스러운 일이다. 어쩌면 나의 르완다 선교여행은 내가 믿는 종교의 이름으로 행하여진 죄 값을 조금이라도 보상하고자 하는 마음에서였는지 모른다.
교회말고도 르완다 사람들이 도움이 필요한 시간에 그들을 외면한 단체가 있다. 유엔이다. 내가 아는 대부분의 르완다 사람들은 유엔에 향한 원한이 깊다. 종족학살이 일어나기 몇 달 전부터 유엔은 르완다에서 움직이고 있는 투치족 말살계획을 눈치채고 있었다. 그래서 유엔은 상황을 감시하기 위해 관찰자들을 보냈었다. 후투족 정부가 체계적으로 종족학살을 계획하고 진행하고 있는 동안 유엔은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은 채 방관하고 있었다. 흉악하고 잔인한 살해가 진행되고 있는 동안에도 유엔 헬리콥터는 르완다 공중을 빙글빙글 돌면서 행동을 취하지 않았다.
사악한 정부 지도자들이 라디오를 통하여 국민들에게 투치족 말살 메시지를 방송하였지만 유엔은 손을 쓰지 않았다. 정부가 운영하는 방송국에서는 “바퀴벌레들”(투치족을 가리키는 말)을 말살시키라고 충동하면서, 공포에 싸여 있는 투치족 여자들과 어린이들이 숨어 있는 장소를 후투족 시민군인들에게 방송으로 자세하게 알려주었다. 유엔이 라디오 탑에 폭탄 하나만 떨어뜨려 폭파시켰더라면 수백만명의 생명을 앗아간 참혹한 대량학살을 방지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키갈리 사람들은 말한다.
어떤 경우에는 폭탄이 대량살해를 중단시키는데 가장 좋은 방법일 수도 있다는 예이다. 폭력이 평화로 이끌어간다는 것이 나에게는 여전히 패러독스이다.
세상이 필요로 하는 것은 “폭탄이 아니라 책이다”라는 말이 맞다. 지난번 르완다를 방문하였을 때, 나는 100파운드의 책과 학용품을 가지고 갔다. 하지만 슬프게도 우리의 현실은 이러한 단순한 슬로건보다는 훨씬 복잡한 세상을 살고 있다는 것이다. 1994년 한방의 폭탄이 르완다를 구하였을 것이다. 2003년 르완다를 구하는 것은 책이다. 교육이다. 영혼 치유이다.
나는 이라크와 싸우고 있는 미국의 지혜에 갈등하고 있다. 항상 그랬듯이 나는 평화를 원한다. 하지만 영국 철학자 에드먼드 버크가(Edmund Burke) 말한 것처럼 “악이 승리할 수 있는 필수조건은 선한 사람들이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이다”라는 말에 담긴 진실을 또한 인정하기에 이번 전쟁을 보면서 갈등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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