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전쟁 탓하지 말라

2003-03-25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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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는 “지정학적 불안 요소” 때문에 향후 미 경기를 전망할 수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경제 정책 입안가들의 눈을 가리고 있는 것은 전쟁의 안개가 아니라 증시 버블이 남긴 재정의 안개다. 3년째 주가가 내리고 경제가 어려운 것은 전쟁 때문이 아니라 과도한 호경기에 그 원인이 있다.

주식이 오르면 투자가 늘어난다. 매우 높은 주가는 과도한 투자를 유발한다. 1929년 대공황 직전보다 더 높은 주가는 극히 과도한 투자를 초래한다. 비즈니스 투자가 그토록 오랫동안 그토록 낮은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90년대 말 하늘 높은 줄 모르던 주가가 불황을 유도하기에 충분한 과 투자를 불러 온 것이다.

2001년 3월 시작된 불황은 이제 끝났지만 회복은 더디다. 고 유가와 테러 위협도 그 원인의 하나지만 더 큰 이유는 자본이 잘못 투자됐기 때문이다. 저축한 돈은 물론이고 빚까지 내 컴퓨터 등 하이텍 장비 마련에 쏟아 부었다. 그로 인한 과잉 공급이 과도한 경쟁과 낮은 이윤을 불러 왔고 그 결과 주가 폭락과 불황이 초래된 것이다. ‘신 경제’란 애당초 없었다.


지금 기업 생산 시설의 1/4이 놀고 있고 취업 희망자도 사정이 비슷하다. 9·11 이전에 시작된 이런 현상을 전쟁 탓으로 돌려서는 안 된다.

거품이 터진 후 FRB는 2001년 1월 이후 12차례나 금리를 내렸다. 그것도 모자라 필요하다 면 달러를 무한정 찍겠다고 까지 공언했다. 다시 말해 인플레도 불사하겠다는 것이다. 앨런 그린스팬 FRB 의장은 단기금리뿐 아니라 장기금리도 인위적으로 낮추겠다고 밝혔다.

전쟁은 일방적으로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경제는 다르다. 그럼에도 현재 FRB는 연방 채권을 마구 삼으로써 돈을 시중에 풀고 있다. 그 결과 주가와 모기지 금리가 급등하고 있다. 이 추세가 계속되면 재 융자 붐은 끝날 지도 모른다.

전쟁 때문에 불황이 온 것은 아니지만 인위적인 인플레 정책이 계속될 경우 불경기가 더 악화되는 사태가 올 지도 모른다.

제임스 그랜트/뉴욕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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