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어필하는 기도

2003-03-25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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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바그다드에 쏟아지는 수천 개의 미사일만큼 많은 기도가 하늘로 쏘아 올려지고 있다. 전장에서, 백악관과 바그다드 벙커에서, 미군과 이라크군 고향집에서도 기도가 일상화됐다. 이슬람사원, 교회 등에서도 저마다 다른 제목으로 기도한다.

“전쟁을 신속하게 끝내 이라크에 친미정권을 수립하고 미국경제도 살려 재선기반을 다져야 할텐데.” 부시가 전쟁을 일으키기 전부터 품어 온 기도다. 그가 독실한 크리스천이라고 하지만 국제사회의 반대와 무고한 양민희생 우려에 아랑곳하지 않고 잠재적 위협에 대해 일방적인 선제공격을 감행했으니 ‘어필하는 기도’는 아니다.

“미국이 이라크포로들을 제네바협정에 따라 대우하듯 이라크도 미군포로를 제대로 대우해야 할텐데.” 속전속결을 기원하던 럼스펠드 국방장관이 미군생포 소식에 예기치 않던 기도를 첨가했다. 포로를 정당하게 대우해야 하는 것은 국제협약을 떠나 인도주의 차원에서도 당연하지만, 유엔의 다수의견을 헌신짝처럼 내던질 땐 언제고, 상황이 다급해지자 국제 협약 운운하는 것은 ‘낯간지러운 기도’에 다름 아니다.


“악의 세력을 제거하려는데 물정 모르는 사람들이 반전데모를 하고 있으니 안타깝다. 민초들이 이번 전쟁의 숭고한 뜻을 이해해야 할텐데.” 이번 전쟁결정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온 체니 부통령은 일이 잘 마무리돼 궁극적으로 부시와 함께 칭송 받는 정치인이 되길 바라고 있다. 가공할 군사력으로 승리할 수는 있겠지만, 모호한 ‘악의 축’ 개념을 좇아 다른 주권국가를 파괴하면서까지 존경받는 인물이 되려는 것은 지구촌의 공동선을 희구하는 기도가 아니다.

“아랍권에 유화제스처를 보여 서서히 세력을 키워 온 러시아의 남진 가능성을 이번 기회에 봉쇄해야 할텐데.” 러시아 전문가인 라이스 안보보좌관은 단순히 이라크와의 전쟁보다는 중동지역에 대한 통제력을 강화함으로써 러시아를 꼭꼭 묶어 두려는 큰 그림을 그려왔다. 초강대국의 지위도 성에 차지 않아 전세계를 발아래 두려는 것은 돈을 더 벌게 해 달라는 ‘갑부의 기도’나 진배없다.

“우리 영토를 침략한 적들과 맞서 싸우는 이라크 국민들이 잘 참고 견뎌내 승리의 열매를 얻어야 할텐데.” 아랍권과 국제사회에 미국의 침공을 비난하는 여론이 거센 것은 사실이지만, 12년 전 쿠웨이트를 침공했다 연합군에 패퇴해 주민들을 고통 속으로 몰아 넣은 장본인인 후세인이 무슨 낯으로 국민들의 인내를 당부하는지 모를 일이다.

“러시아가 이라크 군을 돕지 말아야 할텐데.” 러시아 민간군수업체가 이라크에 전자교란장비 및 기술을 제공하고 있다는 보도에 파월 국무장관은 사태가 이상한 방향으로 틀어지지 않도록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러시아 정부가 공식적으로 이라크 지원에 개입한 것은 아니라고 하지만, 미국이 전쟁 전에 러시아의 지지를 얻어냈더라면 이런 일의 예방이나 사후 처리가 용이했을 것이다. 소 떠난 외양간을 수습하려는‘뒷북치는 기도’일 뿐이다.

“이라크 재건사업을 반드시 따내야 할텐데.” 미국의 몇몇 재벌기업들이 전후 돈벌이에 벌써 군침을 흘리고 있다. 어차피 전쟁은 끝나고 폐허더미는 치워져야 하겠지만 사람들이 죽어나가고 있는 마당에 장사 계산부터 하고 있으니 가슴 없이 머리로만 하는 ‘차가운 기도’ 그 자체다.

“수천년의 더부살이를 끝내고 이번 기회에 독립해야 할텐데.” 이라크 북부에 사는 쿠르드족은 미군에 힘을 보태주면서 반대급부로 쿠르드 독립국가 수립을 갈망하고 있다. 민족의 숙원이니 무조건 탓할 일은 아니지만, 미군에 영공을 개방해 일정한 발언권을 확보한 터키가 쿠르드족을 ‘불안요소‘로 간주하고 있고 후세인도 곱지 않은 시선으로 쿠르드족을 보고 있어 또 한차례 대학살을 부를 수 있는 ‘위험한 기도’다.

이처럼 전시에는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하고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려는 ‘기도’가 판을 친다. 그렇다고 ‘어필하는 기도’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이라크에 폭탄을 떨어뜨리는 걸 생각할 때 바로 내 모습이 떠올라야 할텐데.” 이라크 출신 미국 여중생이 반전집회에서 행한 연설의 한 대목이다.

미군이 민간인 희생을 줄이려고 애를 쓰고 있지만, 이라크 인구의 절반이상이 15세 미만의 어린이란 점에서 이 여중생의 애절한 호소는 ‘어필하는 기도’임에 틀림없다. 인터넷을 통해 급속도로 전세계에 퍼지고 있는 이 소녀의 기도에 어떤 형태로든 ‘희망적인 응답’이 있었으면 한다.

박 봉 현 <편집위원>
bongpark@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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