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2003년의 펄 하버

2003-03-19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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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대서양 건너 전쟁을 준비하고 있는 동안 태평양 건너서는 다른 위험하고 적대적인 정권이 미국의 정책을 받아들일 수 없으며 무력을 사용해서라도 이를 바꾸겠다는 신호를 매일 보내오고 있다. 미국이 이라크에 정신을 쏟고 있는 동안 동아시아에서는 우리 힘이 부족한 틈을 노릴 수 있는 기회가 생기고 있다.

미국은 동아시아에서 심각한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부시는 무력 사용 가능성을 언급하고 폭격기를 보내 결의를 과시했다. 그러나 북한도 신문은 볼 줄 안다. 미 육군 10개 사단 중 8개 사단은 이라크 일대와 보스니아, 아프가니스탄에 파병돼 있다.

12개 항모 함대 중 5개는 페르샤만에, 3개는 정비 중에 있고 1개는 막 정비가 끝난 상태다. 지금 당장 행동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은 3 그룹뿐이다. 북한이 공격해 올 경우 이를 막을 수 있는 군대는 사실상 없다.


이와 동시에 부시의 호전적인 발언은 북한으로 하여금 시간이 없다는 생각을 갖게 할지도 모른다. 이라크와의 전쟁이 끝나 미국이 북한을 향해 충분한 병력을 배치할 때까지 과연 그들이 기다리려 할 것인가.

일본이 1941년 진주만을 기습한 것도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그 때도 미국을 이길 수 있다는 생각으로 한 것은 아니었다. 우리를 공격함으로써 정책을 바꾸려 한 것이다. 북한이 우리를 공격하거나 위협함으로써 협상 타결 쪽으로 정책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다면 그들은 어떻게 나올 것인가.

우리가 현 상황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여러 가지다. 하나는 지금 이라크와 전쟁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잘못된 생각이다. 지금까지 우리가 뭘 잘못 했든 이제 물러선다는 것은 그 결과를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사담은 국제 여론을 분열시켜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다고 결론짓고 대량 살상 무기를 적극 개발하려 들 것이다. 깡패 국가에 대한 억지력은 대폭 약화될 것이다. 이제 와서의 전쟁 포기는 ‘국제 사회’의 승리가 아니라 깡패국가의 승리다.

또 다른 교훈은 우리가 북한과 대화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주장의 문제점은 94년이래 우리가 북한이 약속을 깰 때마다 선물을 주는 일을 반복해왔다는 점이다. 이런 식의 ‘대화’는 받아들일 수 없다. 현 정권이 평양에 있는 한 동아시아의 안정은 불가능 하다.

현 상황이 주는 분명한 교훈은 우리가 중대한 국가적 위기를 맞고 있다는 점이다. 이에 대처하기에 현 미군 병력은 턱없이 부족하다. 부시는 하루 속히 미군을 증강해 북한이 오판할 기회를 주지 말아야 한다.

프레데릭 케이건/워싱턴 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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