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동서양의 옳고 그름

2003-03-13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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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한국에서 매일 반미 시위를 하였던 것을 나는 기억한다. 이와 같은 대규모 시위는 미국을 반대하는 것이 첫 번째 목적이고, 한국에 주둔한 미군들을 향한 반감을 표현하는 데모이고, 더욱 더 자세히 말하자면 두 명의 미군 병사들이 무죄로 판결받은 결과에 대한 반대 데모이다. 시위자들은 두 명의 군인들을 감옥에 넣어야 한다고 요구하고 부시 대통령이 미국을 대표하여 직접 사과하라고 촉구하였다.

나는 시위하는 한국사람들 입장에 서서 그들의 심정을 이해하려고 많은 노력을 하였다. 반미시위의 근본적인 원인을 곰곰이 생각하면서 동양과 서양의 도덕성, 즉 옳고 그름을 보는 관념의 차이라는 결론을 나름대로 내렸다. 성조기를 태우며 반미감정을 표현하는 시위자들의 감정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는 실마리를 기독교 도덕에 관한 책을 읽으면서 발견하였다.
기독교 신학자 어거스틴 성자는 “오로지 악한 행위는 악한 동기에 있다” 라고 말하였다. 이와 같은 원칙이 서양 도덕성의 주축이 되어졌다. 위의 개념을 설명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은 예를 들어보겠다.

한 일꾼이 성당의 높은 지붕 위에서 공사를 하고 있었다. 일하는 도중에 그의 실수로 지붕의 기왓장이 떨어져 지나가는 사람이 죽게 되었다. “이 일꾼에게 잘못이 있는가?” 서양식 전통으로는 말하면 “아니다” 라는 대답이 나온다. 왜냐하면 그 일꾼에게 악한 동기가 없었기 때문에 잘못이 없다.


이야기를 조금 바꾸어 보자. 똑같은 일꾼이 건물 밑으로 지나가고 있는 똑같은 사람을 보았다고 하자. 그가 똑같은 기왓장을 집어들어 그 사람 머리 위에 떨어뜨려 그 사람이 죽었다고 하자. 질문을 다시 하여 보자. “이 일꾼에게 잘못이 있는가?” 서양식 전통으로 따진다면 “예” 라는 대답이 나온다. 왜냐하면 악한 동기를 가지고 한 짓이기 때문에 악한 행위이다.

만약에 위의 대답에 동의하는 당신이라면 당신은 서양식 사고중심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많은 한국사람들에게 위에서 설명한 개념이 잘 이해가 되지 않는 것 같다. 두 가지 경우가 똑같은 결과를 가져왔다. 일꾼의 행동의 결과로 사람이 죽었다. 만약에 결과를 사실로 인정한다면 두 가지 경우가 다 일꾼이 잘못하지 않았는가.

반미시위의 계기가 된 두 명의 미군의 경우를 보자. 서양식 도덕견해로 보았을 때, 첫째 그들의 동기가 중요하고, 결과는 그 다음이다. 동양적인 도덕견해로 본다면 먼저 결과를 보고 동기는 그 다음이다. 이러한 도덕성 견해차이로 여학생 참사사건은 한국사람들의 분노를 자아내었고 결국은 한미관계를 심각하게 만들었다.

어떤 동양적 사고는 미국사람들에게 이상하게 생각이 된다. 예를 들어 대구 지하철 참사와 같은 큰 사고가 일어났을 때, 정부관리가 공개적으로 사과를 한다. 관계되는 장관이 직접 국민에게 눈물을 머금고 사과하고 사표를 내는 것을 보게된다. 이와 같은 반응이 미국사람들에게는 참으로 이상하게 보인다. 책임자가 악한 동기로 그 사건을 저지른 것이 아니지 않는가.

왜 한국사람들이 미국 대통령에게 두 여학생들의 죽음을 사과하라고 요구하는가? 대부분의 미국사람들은 한국사람들의 요구를 이해하지 못한다. 부시 대통령이 여학생들의 죽음을 애도하고 섭섭함을 표현하였다. 그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사과는 생각지 못하였다. 미국사람들은 자신이 개인적으로 잘못하여 책임을 소홀히 하였거나 악한 동기로 저지른 잘못에 대하여 사과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쪽이 “사과하라” 하고 다른 쪽이 “사과하지 않겠다”고 할 때 항상 그 관계는 긴장 될 수밖에 없다. 한국이 일본이나 중국과 대화를 할 때 “죄송하다” “사과하라”는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양쪽이 정확하게 안다. 두 나라 사이에 의견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혼동은 없다. 그러나 한국사람들과 미국사람사이의 대화에서 “사과하라”는 말은 의견의 차이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의미의 혼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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