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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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3-08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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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3월밖에 안됐지만 ‘올해의 가장 웃기는 사설’ 수상자는 이미 정해진 것 같다. 지난 화요일 미국-북한과의 직접대화를 촉구한 뉴욕타임스 사설이 그것이다.

이 사설은 “북한의 나쁜 행동이 보상받지 못한다는 것을 분명히 밝힐 곳은 협상 테이블”이라고 끝맺고 있다.

이는 명백한 잘못이다. 협상 테이블은 주고받는 곳이다. 나쁜 행동이 보상받지 못한다는 것을 분명히 밝힐 수 없는 곳이 바로 협상 테이블이다.


그렇게 되면 협상 자체가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미주리호 선상은 협상 테이블이 아니었다. 우리는 거기서 무조건 항복을 요구했다. 협상 테이블에서는 양보를 해야 한다. 직접 대화를 요구하는 평양측 주장을 받아들이는 것 자체가 중요한 양보다.

때로는 유화가 유일한 정책일 수 있다. 그러나 양보를 주창하면서 아무 것도 주지 않는 척하는 것은 안 된다. 유화정책을 펴야 할 때가 왔는지는 모르지만 그렇다고 환상에 빠져서는 안된다.

우리가 북한과의 직접 대화에 응한다면 그것은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의무를 지켜야 한다는 훈시를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양보를 하기 위해서다. 꼭 그래야 하나. 우리는 현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현실은 지난 두 달 사이 한반도에서 미국의 입장이 급속히 악화됐다는 사실이다.

첫째, 우리는 이 곳에서 우리 영향력이 거의 없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우리는 주변국들이 북한에 압력을 가해 위기를 해소해 줄 것을 기대했으나 한중일과 러시아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중국은 북한이 무너지면 난민이 몰려들 것과 한국 투자가 줄어들 것을 우려하고 있으며 한국은 전쟁으로 서울이 불바다가 될 것을 걱정하고 있다.

북한에 압력을 가했다가 전쟁이 나면 주변국 사람만 피해를 본다는 게 이들 생각이다. 전쟁이 수년간 늦춰진다면 북한은 미사일과 핵무기로 미국 본토를 공격할 수 있게 된다. 따라서 주변국들은 전쟁이 날 바에야 나중에 나길 바라고 있다. 지금 문제를 무시하고 훗날로 떠넘기고 싶어 한다.

둘째, 이라크와의 전쟁 준비가 너무 오래 끌었다. 겨울로 예정돼 있던 전쟁은 아직 일어나지 않았다. 그랬더라면 지금쯤 미국은 주의와 군사력을 북한을 향해 돌릴 수 있었을 것이다.

셋째, 북한은 나날이 위험 수위를 높여가고 있다. 지난 주말에는 미 정찰기에 북한 전투기가 따라 붙었다. 미국은 동시에 두 곳에서 전쟁을 할 능력이 없으며 북한도 이를 알고 있다. 그 이점을 최대한 살리려 하는 것이다.
지금 이슈는 북한 핵 개발을 막는 것만이 아니다. 김정일은 미국의 취약점을 노려 전쟁을 일으켜 한국을 기습, 지도를 다시 그리려 할지도 모른다. 1973년 이집트는 수에즈 운하를 건너 이스라엘을 급습, 중동 지도를 다시 그렸다.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인가. 이라크 때문에 미국은 지금 전쟁을 할 수는 없다. 이라크는 우리 군사, 정치, 외교력을 소진했다.

지금 유일하게 남은 대안은 시간을 벌기 위해 북한에 양보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시간을 벌기 위한 것일 뿐이다. 우리가 전쟁 억지력을 갖는 것은 이라크 전이 끝난 이후이다. 그 사이 북한에 대해서는 유화정책을 펴야 한다. 처음에는 직접 협상을 다음에는 경제 외교적 당근을 제시하는 것이다.

이는 유화정책이지만 일시적인 것이다. 이라크 전쟁이 끝나는 순간 이 정책도 끝난다.

그 후에는 북태평양에 북한을 위협할 수 있는 충분한 군사력을 배치해야 한다. 그 때가 되면 더 이상 나쁜 행동은 보상받지 못하게 되고 우리는 북한에 핵 개발 중단을 강력히 요구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우리는 김정일의 핵 폭탄이 미국 내를 공격할 때까지 기다릴 수 없다.

찰스 크라우트해머
/ 워싱턴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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