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힘 얻는 종말론

2003-02-08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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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10년 전 우리는 후쿠야마 교수의 ‘역사의 종말론’을 읽었다. 그 다음에는 헌팅턴 교수의 ‘문명 충돌론’이 나왔다. 이제 우리는 이보다 더 끔찍한 상황에 놓여 있다. 문명의 출동이 아니라 문명의 종말, 어쩌면 세계의 종말을 우려해야 하는 처지에 놓인 것이다.

지난 주 백악관은 이라크 전 때 핵무기 사용을 배제하기를 거부했다. “미국과 세계를 대재난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모든 수단을 쓸 수 있다”는 것이다. 화요일에는 평양이 “미국이 스스로 판 무덤에 빠질 위험이 있으며 그렇게 되면 다시는 일어서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미국 지도자들의 발언도 미래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가를 보여준다. 럼스펠드 국방장관은 미국이 핵 공격을 받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말했다. 부시도 국정연설에서 생화학 테러의 위험을 경고했다. 43%의 미국인(워싱턴 일대는 61%)들이 테러에 대비한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은 놀랄 일이 아 니다.


90년대 좋았던 시절에는 클린턴은 민주주의와 자유 시장의 복음을 전파하고 다녔다. 역사는 “끝났고” 깡패국가는 작은 이슈에 불과했다. 정보 혁명이 전 세계 민주주의를 촉진하고 있었고 다우는 1만2,000대를 향해 가고 있었으며 세계화는 평화와 번영을 약속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 다우는 폭락하고 세계화반대 데모가 세계를 뒤덮고 있으며 우리는 대량 살상 무기를 휘두르는 악의 축 국가와 전쟁을 준비하고 있다. 2002년 6월 CNN/ 타임지 조사에 따르면 미 국민의 59%가 요한 계시록이 현실로 나타날 것이며 17%는 자기 생전에 세상의 종말이 올 것으로 믿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도대체 낙관론과 발전에 대한 믿음은 어디로 갔는가. 기술 진보가 보다 나은 미래를 가져다 줄 것이란 믿음은 계몽주의 이후 서양 문명의 초석이 돼 왔다. 불과 10년 전 우리는 산 정상에 서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제는 낭떠러지에 간신히 매달려 있는 느낌이다.

9·11 사태가 새로운 무드를 단적으로 보여줬지만 이보다 더 큰 힘이 움직이고 있다. 테크놀로지가 보다 나은 세상을 만들고 있다는 믿음이 테크놀로지가 깡패국가에게 힘을 실어 줘 주인에게 덤벼든 프랑켄슈타인 같은 괴물로 만들고 있다는 두려움으로 바뀌고 있다.

인류가 발전이 가져온 희망에 젖어 있다가 현실이란 찬바람에 깨어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100년 전 에드워드 왕조 시절 영국인들은 지난 100년 간의 경제 발전과 사회 개혁을 돌아보며 역사는 끝났고 모든 문제들은 해결됐다고 생각했다. 경제학자들은 전쟁이 가져올 엄청난 손실을 예로 들면서 제정신 가진 사람이라면 전쟁은 할 수 없기 때문에 전쟁은 지상에서 사라질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나 제1차 대전과 볼세비키 혁명은 이런 믿음에 흠을 냈다. 그 후 제2차 대전과 유태인 학살, 원폭 투하 등이 벌어졌다. 핵 시대의 도래와 함께 종말론은 더 이상 광신도 집단의 전유물이 아니게 됐다.

사담 후세인이 사라져도 종말론은 오랫동안 우리 곁에 남을 것이다. 늙은 유럽을 제외하고는 비종교적 모더니즘은 퇴조하고 종교적 근본주의가 득세하고 있다. 알 카에다가 어떻게 되든 소외된 제3세계의 젊은이들은 서방세계에 대한 테러 단체에 몰릴 것이다. 진보의 시대는 끝나고 ‘세계의 파괴자’ 시바의 시대가 열리고 있다.

월터 미드/ 워싱턴 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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