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항공안전 ‘구멍’ 났나
▶ 1월 포토맥강 참사 이후
▶ 올들어 ‘아찔’ 상황 빈발
▶ ‘충돌 직전’ 연 300여 건
▶ “관제인력 부족”등 지적

델타 항공기와 아에로멕시코 여객기가 같은 활주로에서 동시에 이착륙하다 충돌사고가 날 뻔한 멕시코시티 공항. [로이터]
올해 들어 미국에서 항공기 사고가 빈발하면서 승객들의 불안감이 극에 달하고 있다. 연이은 엔진 결함과 기내 화재, 바퀴 파손, 심지어 여객기와 군용 헬기 간 충돌 참사까지 발생하며 하늘길의 안전을 둘러싼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지난 18일 노스다코타주의 마이넛공항 상공에서 델타항공 제휴 스카이웨스트 항공기 3788편과 미 공군 B-52 폭격기가 근접하며 충돌할 뻔 한 아찔한 상황이 연출된 데 이어(본보 23일자 A2면 보도), 또 다시 이륙을 준비하던 델타 여객기가 같은 활주로에 착륙하는 여객기와 충돌하는 대형 참사가 날 뻔 한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항공 당국에 따르면 지난 21일 멕시코시티의 베니토 후아레스 국제공항에서 아에로멕시코 여객기가 이륙을 준비하던 델타항공기 바로 위 60m 상공을 지나며 착륙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관제탑의 이착륙 동시 지시 가능성이 제기됐으며, 델타항공은 즉시 이륙을 중단하고 터미널로 복귀했다. 해당 항공기에는 144명의 승객이 탑승해 있었다.
이보다 사흘 전인 지난 18일에는 LA국제공항을 출발한 델타항공 여객기가 이륙 직후 엔진에 화재가 발생해 공항으로 급히 회항했다. 다행히 인명 피해는 없었으나, 고열의 불길이 엔진에서 뿜어져 나오는 영상이 퍼지며 승객들 사이에 큰 공포를 안겼다.
가장 충격적인 사건은 지난 1월 말 워싱턴 DC 포토맥강에서 벌어진 여객기-군 헬기 충돌 사고다. 아메리칸항공 자회사 PSA의 소형 여객기가 블랙호크 헬기와 충돌해 탑승객 67명 전원이 사망했다. 당시 워싱턴 DC는 추운 날씨에 포토맥강 수온이 떨어져 구조작업도 난항을 겪었다. 연방수사국(FBI)은 테러 가능성을 배제했지만, 관제 부실이 사고 원인으로 떠올랐다. 사고 당시 로널드 레이건 공항의 관제탑엔 단 1명의 관제사가 두 항공기를 동시에 통제하고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어 올 2월에는 델타항공 시드니행 여객기에서 기내 연기가 발생해 이륙 30분 만에 비상 착륙했고, 4월 프론티어항공은 착륙 도중 바퀴가 부러지며 활주로에 불꽃이 튄 사고가 발생했다. 유나이티드항공 역시 엔진 결함과 유압 문제로 엿새 동안 5건의 사고가 잇따랐다.
기계적 결함 외에도 항공 관제 시스템의 부실이 복합적인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최근 1년간 민간 항공사 관련 ‘충돌 직전’ 사고는 300건 이상으로, 10년 전보다 두 배 이상 증가했다. 특히 인력 부족이 심각한 연방 항공청(FAA)은 지난해 관제사와 기술직 등 수백 명을 해고해 비판을 받고 있다. 전문가들은 “관제사 한 명이 두 명 몫의 업무를 떠맡는 상황에서 치명적 사고는 시간문제”라고 경고한다.
항공기 제작사와 항공사들의 안전점검 시스템에도 허점이 드러난다. 보잉 여객기는 올해도 엔진 고장, 바퀴 분리, 동체 균열 등 반복적인 결함으로 회항하는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에어프레미아는 기체 결함으로 지난 3월 일부 미주 노선 운항을 중단했다. 알래스카에선 이륙 직후 독수리와 충돌해 항공기가 회항하는 등 외부 충돌 리스크도 늘고 있다.
이처럼 반복되는 사고는 단순한 우연이나 기계 노후화만으로 설명되기 어렵다. 조종사와 관제사, 정비 인력의 과중한 업무, 정부의 구조조정, 감독기관의 무기력까지 복합적인 구조적 문제가 얽혀 있다. 전문가들은 항공사별 재발 방지 대책은 물론, FAA 등 감독기관의 인력 확충과 시스템 전면 점검이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업무상 자주 비행기를 탄다는 한인 스티브 김씨는 “무사고 기록을 자랑하던 미국 항공 시스템은 지금 구조적 균열 앞에 서 있어 비행기 타는 게 두렵다”며 실질적인 안전개선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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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세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