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겨울에도 역시 많은 사람들이 우리집을 방문했고, 아직도 방문객이 한 사람 묵고있다. 매년 여름과 겨울, 소위 항공사들이 말하는 성수기 기간에는 항상 많은 이들이 엘에이를 방문해서 우리집에 묵는다. 특별히 우리집을 선호하는 이유가 내가 성격이 좋아서이겠지 라고 믿고 싶지만, 아마도 더 큰 이유는 내가 혼자 살기 때문일 것이다. 아무래도 부모님, 아이들, 남편 등이 있다면 눈치볼 일도 많고 불편할 일도 많을 것이라 생각된다. 내 룸메이트가 매년 여름과 겨울, 방학하자마자 한국에 들어가기 때문에 방이 하나 비는 것도 사람을 끌어들이기 좋은 이유일 것이다.
그동안 방문한 사람들 중에는 영국으로 이주한 대학 동기, 일본에 사시는 고모, 전 룸메이트, 롬메이트의 가족, 인터넷 동호회에서 만나 친해진 사람 등 매우 다양한 나이와 인종과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서로 약속을 해서 여행 날짜를 잡고 우리집에 오는 게 아니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여행 일정이 겹쳐서 우리집에서 함께 지낸 사람들도 있었다.
한 때, 내 고모부와 그의 아들, 룸메이트의 어머니와 이모 두분 그리고 이모의 딸, 어학연수차 미국에 왔다가 돌아가는 길에 들린 학생 등 나와 룸메이트까지 모두 아홉명이 한 집에서 잔 적이 있다. 그러다보니 서로 전혀 모르는 사이끼리 만나서 인사를 하고 얼굴을 익히는 일이 자주 있었다. 생각해보면 일본에 사는 나의 고모부와 서울에 사는 내 룸메이트의 이모들과 만난 것, 영국에 사는 내 대학 동기와 서울에서 유학온 내 룸메이트가 만난 것 등 참으로 드물게 여겨지는 만남들이었다.
세상에 살면서 이런 지나가는 듯한 만남이 질긴 인연이 돼서 내 인생 항로를 바꾸어놓는 일을 종종 보게된다. 더불어 살아가는 이 세상에서 사람이 누구를 만나는가 하는 일은 어쩌면 가장 중요한 사건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
작곡가 로베르트 슈만은 서점 주인이자 문인이며 출판업을 하던 아버지와 성악가 어머니를 둔 피아니스트였으니, 가곡 작곡가로서 더할 나위없는 조건 속에 성장했다고 볼 수 있다. 가곡이란 보통 한 사람의 성악가와 한 사람의 피아니스트가 연주하게 되는데, 대개의 경우 피아노와 성악 양쪽을 아주 잘 이해하고 있는 작곡가가 드물고, 두 부문에 다 뛰어나다고 할지라도 문학적인 소양이 따라주는 사람은 정말 찾기 힘들기 때문이다.
의도에 꼭 맞는 좋은 서정시를 찾아서 제대로 해석하고 이해하여 그 시를 잘 표현할 수 있도록 곡을 붙이는 작업은 그래서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어느 부분이 그 글의 클라이맥스인지, 어떤 단어에 액센트를 넣어야 하는지 하는 것은 일일이 옆에서 다른 이가 가르쳐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괴테와 같이 뛰어난 문인들이 직접적으로 요구하고 참견하여 작곡된 가곡들은 현재까지 기억되는 곡이 별로 없는 걸 보면, 가사가 너무 중요해서 음악을 최소한 절제하고 싶어하는 문인들이 작곡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가사, 멜로디, 피아노 반주 이 세가지를 다 잘 알고 그 밸런스를 맞출 수 있는 작곡가가 필요한 것이다.
그런 면에서, 많은 문인들과 절친한 친분을 유지하였으며 어려서부터 성악과 피아노 공부를 한 슈베르트보다, 오히려 피아니스트로서 성악에 대한 깊은 이해와 많은 책을 읽고 자란 슈만이 어쩌면 가곡 작곡가로서 최고의 자리를 차지할 조건을 더 많이 갖추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당대 최고의 피아니스트라 여겨지던 프란츠 리스트가 젊은 작곡가 슈만을 만나기 원했을 때, 그는 아내이자 천부적 재능을 지닌 피아니스트 클라라가 혹시라도 리스트를 만나고 가까와지는 것을 꺼려했기 때문에 거절하고 만나지 않았다. 아내의 피아니스트적 재능에 대한 열등감이 그로 하여금 리스트를 멀리하게 한 것이다.
결국 슈만은 평생 리스트를 만나지 않았고, 그의 가곡은 열정과 드라마를 좀 더 가미하였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아쉬움을 남긴다. 당시 재능있는 젊은 음악가들을 발굴하여 그들의 곡을 연주하며 돕길 즐겨하던 리스트가 슈만과 만나서 가까와졌더라면 어땠을까. 슈만이 좀 더 유명세를 떨치고 더욱 왕성한 의욕으로 작곡을 하지는 않았을까. 모르긴 몰라도 화려하고 정열적인 음악가 리스트의 영향으로 이후 작곡된 곡들에 큰 변화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누구나 다른 사람의 영향을 받고 성장한다. 그냥 스쳐 지나가는 만남이라도 나중에 나를 크게 변화시켜줄 귀한 인연으로 발전될 가능성이 있어서 소중하다. 일부러 만나려해도 만날 수 없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내 삶의 방향을 틀어줄만한 큰 인연이 될 사람을 소심해서, 게을러서, 혹은 열등감으로 피하고 만나지 않는건 아닌지 생각해보게 된다. 언제 어디서 만나서 인연을 맺을지 모르는 많은 사람들. 그들 속에 내가 살면서 누군가 내게 손을 뻗쳐왔을 때 잡고 같이 동행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기 위해 항상 노력을 게을리 하면 안되겠다는 생각도 해본다.
휴가철을 맞아 우리집을 거쳐가면서 스쳐가는 인연으로 만난 많은 사람들이 미래에 어떤 인연으로 다시 만나게될지 궁금하다.
새라 최<피아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