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만철 칼럼 나를 찾아서 실패한 철학자
2002-12-28 (토) 12:00:00
인간은 왜 사나?
태어나서 죽고, 죽고 나면 모두 잊혀버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나고 죽고 하는데 나는 왜 또 이 힘든 일을 계속 해야하나? 의사가 되고 결혼을 하고 늙고 죽고 그래서 뭐가 남는단 말인가? 도대체 세상에서 의미 있는 것이란 무엇인가?
반복되는 질문에 사로잡혀 나는 서서히 모든 것에 회의적이 되어가며 삶에 모든 재미를 잃어가면서 거의 심각한 상태의 우울증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그래도 연세대학 “의” 자 배지를 단 학생이며 운동선수로 대학 1학년 봄 전국 대학 시합에서 우승까지 한 건장한 학생이었고 집안도 중상류 층으로 남들이 부러워 할 위치에 있었으며 별 부족한 것이 없었지만 나는 대학 1학년 여름방학 이후 근 1년 넘어 우울증을 앓았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 우울증의 이유는 정든 고향을 떠나는 것, 대학교육, 정치, 사회환경에 대한 실망, 입학직후 받은 과목낙제, 실연, 심한 호르몬의 변화, 이런 요인들이 원인이 되지 않았나 생각된다.
컴컴한 골방에서 소주를 마시거나 담배를 피우고 늦잠으로 “괴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겨우 학교는 다녔지만 능률이 오를 리가 없었고 죽음도 가끔 생각하다가 도봉산 암벽을 혼자 오르기도 했다. 선인봉 박쥐 코스나 A, B 코스는 아니고 측면 코스를 오른 것을 생각하면 진짜 죽고 싶은 생각은 없었던 것 같았다.
일체의 의미 없는 일을 거부하며 아무런 즐거움도 못 느끼며 허망한 기분에 젖어 거의 식물인간처럼 지내던 어느 날 “의미 없는 일을 한번 해보자” 라는 생각이 불현듯 스치고 지나갔다. 나는 곧 바로 앞마당으로 내려가 땅을 파기 시작했다. 정월이니까 꽤나 추운 날씨에 언 땅이었다.
아침부터 땅을 파고 해가 지면 그 구덩이를 다시 묻고 물을 뿌렸다. 다음 날 다시 언 땅을 파고 저녁에 묻었다. 아무 것도 변한 것은 없고 흔적도 없고 철저히 의미 없는 일을 나는 계속 하고 있었다. 그리고 일주일이 지났다.
밥이 맛있어지기 시작했고, 잠이 깊어졌으며, 팔다리가 뻐근하고, 휴식이 노곤하며 아늑한 느낌을 갖게 했으며 목욕이 가고 싶어졌다. 햇볕이 밝고 따뜻이 느껴졌고 겨울에 차가운 공기가 폐
부를 지날 때 그렇게 상쾌했다. 팔다리를 움직이며 걷는 것이 신이 나기 시작했다.
“야 오랜만에 친구나 만나 대포나 한잔해야지.” 2년여간의 별 뚜렷한 이유 없이 침울하고 힘든 세월이 지나고 나는 다시 생기를 찾았다. 물론 그 후로 나는 다시 ‘인생의 의미’를 묻지 않기로 했다.
지금 학생들은 어떤가? 옛날보다 몇 배로 힘든 노력을 해야된다. 시험 압력에 초등학교 학생이 자살하는 수도 늘어나고, 중고등 학생의 우울증, 탈선, 마약 중독 그리고 우수한 대학교에 들어간 학생들까지도 계속적인 공부 스트레스, 대인관계의 빈곤 및 불화, 부모의 가정문제 등으로 심한 우울병에 걸려서 본인은 물론 주위 사람도 힘들게 하며, 중도 탈락하거나 파멸의 길로 가는 경우를 보게 된다. 회의와 절망과 우울은 인간 성장의 중요한 과정이다 그러나 이 과정이 잘 못 되면 병으로 발달할 수 있다.
지금의 정신의학은 과거 어느 때보다 발달되어있다. 치료를 시작하면 쉽게 우울증에서 헤어나올 수 있으므로 관심을 가지고 우울증이 우울병으로 악화되기 전에 손을 써야한다. 12월 16일 2002년 나는 가끔 생각한다. 만약 내가 지금 우울증에 걸린 대학생에게 아침에 땅을 파고 저녁에 다시 묻고 하기를 일주일을 계속하라고 처방한다면 글쎄 누가 그대로 따를 학생이 있을지? <정신과 의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