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나를 찾아서 증 인

2002-12-07 (토)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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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한 15년 전의 일이다. 한 달에 두세 번씩 진료를 받던 김모씨가 멀리 떠나기 때문에 이제 다시 찾아올 수 없게 되었다고 이야기했다.
“지난 몇년 동안 세심히 저를 잘 치료해 주시고 돌보아 주신데 대해서 선생님 은혜를 잊을 수가 없습니다. 특별히 저의 어머니의 건강을 물으시고 늘 변비가 심하셔서 손가락으로 변을 파드려야 했는데 선생님이 올 때마다 저에게 고무장갑도 주시고 돌보아주신 선생님의 은혜를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 그러면 안녕히 계십시오” 하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이 김모씨는 일류대학을 나왔지만 불행히 정신분열증을 앓고 그 후로 일도 못하게 되어 점점 혼자 고립한 생활을 하면서 피해망상 속에 휩싸여서 오랫동안 고통 속에서 지냈다.
그러나 이 분은 성공한 형제가 여러 명 있는데도 꼭 자기가 노모를 모시고 생활했다. 망상병 환자로서는 좀 드물게 극진히 노모를 모셨지만 얼마 전에 어머니가 사망하고 나서 오늘 이렇게 작별을 고하고 있는 것이다.
모든 약들을 다 써보았지만 증세는 호전되었다가 악화되었다가 하는 경과를 계속 보였으며, 혼자 건설적인 일을 할 수 있기까지는 되지를 못했다.
무어라고 할 말이 없었던 나는 “김 선생 참 내가 김 선생 병을 낫게 해주지 못하고 여러 어려움에 있어도 별로 크게 도와준 것이 없어서 너무나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그저 이제 떠나시면 어디로 가는지 모르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만약에 이 세상을 떠나서 하나님을 만난다면 내가 김 선생께서 이 세상에서 얼마나 힘들게 지내셨는지 증인을 서주겠오.” 이말 밖에 할 수가 없었다.
김 선생은 멀리 떠날 것이다. 그리고 다시 치료를 받으러 가지는 않을 것이다. 김 선생이 떠나고 이미 어둠이 깊던 사무실 창 밖을 바라보는 내 마음은 그렇게 아팠다.
한 15년 전만 해도 정신분열증의 치료는 그렇게 힘든 때가 많았고, 정신과 의사도 능력에 한계를 느끼며 지났다. 그러나 그 후 크로자릴이라는 새로운 정신분열증 치료제가 나온 이후로 정신과 분야의 치료는 놀라운 발전을 보게 되었다.
그 뒤로 나온 자이프렉사 레스피돌 같은 약 또한 분열증과 조울증의 치료에 아주 좋은 효과를 나타내고 있으며, SSRI 계통에 항우울증 약물들 또한 우울증 치료에 놀라운 효과를 나타내고 있다.
현대는 대부분 심한 긴장의 연속으로 많은 스트레스 속에 지내게 되며 이것은 뇌신경 조직에 변화를 일으켜서 우울증과 비슷한 증세를 많은 사람들에게 나타낸다.
이빨을 튼튼하게 하기 위해서 수돗물에 불소를 타듯이 현대인을 위해서 수돗물에 항우울제를 타자고 하는 의사까지 나오고 있다. 10년, 20년된 분열증 환자도 새로운 약물 치료로서 거의 완쾌되는 일도 많이 보고되고 있다.
나는 이제 죽어서 하나님 앞에 내 환자를 증언하는 일을 하기 전에 해야 할 치료가 많다.
김 선생, 혹시 이 글을 보고든 꼭 연락해 주시오. 다시 한번 같이 노력해서 편안한 말년을 보내도록 노력해 봅시다. 조만철 칼럼 <정신과 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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