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세상사는 이야기 네 번째 말의 12월

2002-12-07 (토)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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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시간 끝을 알리는 벨소리에 잠을 깼다. ‘자, 모두 연필 놓고 자리에서 일어선다! 맨 뒤에서부터 답안지 걷어와!’ 내 앞에 놓인 시험지는 두 번째 문제부터 아무 답도 안 써 있다. 초반부터 어려운 문제를 만나 끙끙대다가 그냥 잠이 든 것이다. 앞자리의 아이가 일어나는데 보니 깨알같은 글씨가 빽빽하게 적혀 있다. 대학 입시고사장이다. 나는 재수생이다. 아, 어쩌란 말인가.
이 나이까지도 이런 꿈에 가위 눌려 깨어나야 하나? 시계는 벌써 자정을 지났다. 다른 날 같으면 아직 초저녁도 안된 시간인데 왜 이리 잠이 쏟아지는 걸까. 에이 모르겠다, 좀더 내쳐 자고 새벽에 일어나 맑은 정신으로 쓰지 뭐… 하면서 달콤한 잠의 유혹에 빠져드는 순간, 좀 전의 꿈속에서 시험감독관의 목소리가 이 칼럼 데스크인 정숙희 부장 목소리였다는 생각에 용수철 인형처럼 몸이 퉁겨 일어나진다. 찬물에 세수를 하고 공부방 책상 앞에 앉지만 아무 생각도 떠오르질 않는다. 지난 달 원고마감 직후엔, 이것도 쓰고 저것도 써야지 하면서 어디다 메모를 해두었는데.
연휴동안을 시끌벅적하게 잘 놀면서도 심장 한 모퉁이가 서서히 조여드는 기분이었다. 이맘때쯤이 내 차례일 것 같은데, 설마 이렇게 빨리 돌아오진 않겠지, 아냐 거의 한 달째 될걸, 하지만 순서 때마다 조금 미안한 듯 그래도 단호한 투로 ‘다음 주가 마감예요’ 알려주던 정부장의 전화도 없었잖아. 하루라도 미리 알게 되는 게 겁나서 데스크에게 전화를 걸지도 않고, 지난 주 신문을 찾아보지도 않았는데 결국은 ‘내일 마감’ 통고를 받고야 말았다. 그리곤 이미 자정이 넘었으니 내일이 바로 오늘이다.
이 칼럼의 담당자들은 모두 나를 미워할 게 틀림없다. ‘알고는 있으니 다행이지’ 하는 소리도 들리는 것 같다. 그러면서도 왜 남들처럼 미리미리 못 쓰느냐 하면 정말 할 말이 없다. 한동안은 어떤 심리학자의 학설로 핑계를 삼아도 보았지만 그런다고 무슨 소용이 있으랴.
어려서 배변환경이 나빴던 아이는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를 때까지 용변을 뒤로 미루는 습관이 생겨, 이런 아이가 어른이 되면 막판 초읽기 상습범이 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전쟁통에 피난길에서 태어난 내 또래의 어른이 모두 그렇지는 않을 터이니 시절 탓을 해보았자 도움될 것이 하나 없다. 방법은 그저 쓰는 것뿐. 네 명이 돌아가면서 쓰는데 나머지 필진들은 이미 1~2주전에 이메일로 분량까지 딱 맞춰서 원고가 들어와 있다고 데스크는 나를 비참하게 만든다. 다들 자기 일을 하는 게 있고, 어린 아이들까지 기르는 필자도 있는 데다가, 쓰기도 얼마나 잘 쓰는지 술술 풀려나가는 이야기가 산보하듯 경쾌하고 여유로워, 읽을 때마다 나는 열등감에 빠진다. 하긴 무슨 노벨 문학상 받을 일도 아니고 주말 아침 3분쯤이면 가볍게 읽고 넘어갈 이 몇 장을 가지고 번번이 여러 사람을 불편하게 만들고 긴장시키는지.
‘미리 써서 넘기고 나도 좀 사람처럼 살아봐야지’하는 작정을 하는 지가 벌써 24개월째. 꼭 숨이 턱에 차서, 데스크의 음성이 채근→한심→쌀쌀→멸시의 순서로 바뀌는 전과정을 겪고 나야만 원고가 손에서 떠나니 이게 피학증 노예근성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그래서 어느 날 부처는 왕사성 가란의 아죽원에서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세상에는 네 가지 종류의 말이 있다. 첫째는 채찍의 그림자만 보고도 달리는 말, 둘째는 채찍이 털에 닿기가 무섭게 달리는 말, 셋째는 채찍이나 막대기에 맞아서 어느 정도 상처가 나야 달리는 말, 넷째는 웬만한 상처로는 움직이지 않고 쇠뭉치로 뼈가 부러지게 맞아야 겨우 달리는 말이다. 그대들도 이 네 종류의 말들처럼 그 중의 하나이다”
금년의 마지막 달, 12월이다. 지난 일년도 쇠뭉치로 뼈가 으스러지게 맞고야 벌판으로 달려나간 네 번째 말이 어두캄캄한 그믐 밤하늘을 쳐다보며 혼자 서있는 풍경이 보이는 듯하다.

백재욱 <리맥스100부동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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