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두와 한평생 박철생씨
2002-11-30 (토) 12:00:00
“큰 돈은 못벌었지만…
자녀들 잘 키운게 보람”

박철생(67·사진)씨는 구두와 더불어 한 평생을 살아왔다.
17세때인 1952년 명동 칠성양화점 직원으로 출발, 윌셔가 빌딩숲 뒤편 아이롤로와 7가 코너에서 ‘K-타운 슈 리페어’를 운영중인 현재까지 외길을 걸었다. 46년을 함께 지냈으니 구두에 관한 한 그야말로 도사가 됐다.
한국에 있을 때는 일반인은 물론 프로레슬러 천규덕등 유명인사들과 경무대(현 청와대) 직원들이 그의 손길 덕에 발의 편안함을 누렸다. 그는 75년 미국으로 이민 왔다. 첫 직장은 베벌리힐스의 장애자 구두 전문제작업체. 영어 한 마디 못 했지만 경쟁자들을 실력으로 누르고 당당히 취직했다. 얼마후 독립한 그는 벤추라, 베벌리힐스, 스튜디오 시티등에서 오래 수선점을 운영했다. 그의 단골이 된 할리웃의 스타들이 숱하다. 처음에는 무시하던 백인들이 그의 솜씨에 반해 아들딸 손자까지 데려오던 것도 그 시절의 추억이다.
이젠 나이 들어 생활하기 편한 타운에서 살며 가게를 하는 그는 수선비용을 깎으려 드는 손님에게 “광고나 많이 해 주세요”라며 져주기 일쑤다.
“구두 외에는 아는 것이 없어서…” 다른 일을 하고픈 적은 없었느냐는 질문에 대한 그의 답변에서 한 분야의 프로가 되기 위한 필요충분 조건을 새삼 깨닫게 된다.
한사코 인터뷰를 사양하면서도 한 평생 한 우물을 판 사람만이 지닐 수 있는 미소를 지은 박씨. “큰 돈은 못 벌었지만 구두기술 하나로 2남1녀를 반듯하게 키운 것이 가장 큰 보람”이라는 말로 인터뷰를 마치고 서둘러 수선작업으로 돌아간 그는 천생 ‘신기료 장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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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섭 기자〉peterkim@korea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