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몸살예배

2002-11-09 (토)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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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 성 칼 럼 세상사는 이야기

지독한 몸살을 앓았다. 아주 긴 하루를 지내고 돌아온 밤. 자정이 넘었을 때부터 으슬으슬 어깨가 떨려오면서 목이 카아, 카아, 아파 왔다. 감기는 늘 그렇게 시작된다. 다음 주는 절대로 아파서는 안 되는 한 주간이었으므로, 알고있는 모든 처방을 했다. 눈꺼풀을 치켜올릴 힘도 없는 날이었다.
다진 마늘을 꿀에 개어 뜨거운 물과 삼키고 소금물로 목 안도 헹구고, 비타민 C 1,000 밀리그램, 진통해열제 두알도 먹었다.
팔다리를 와들와들 떨면서, 다음 일주일은 도저히 아프고 있을 새가 없는 주간인 걸 너도 알지 않니? 몸아, 제발 협조해다오. 항생제도 먹여줄께. 노조원들과 타협하는 업주처럼 반란하려는 육체를 수습하려고 이래 얼르고 저래 달래보면서 자리에 누웠다.
위에 다섯겹, 아래로 세겹의 옷을 입고 이불을 두 채 덮고 누웠건만 몸은 계속 떨고 있다. 목안에 고슴도치나 바늘 쌈지를 삼켰나 싶다. 이리 찌르고 저리 쑤셔대는게 조그만 악마들이 뾰족한 창을 들고 총 공격을 해오는 것 같다.
팔 두개, 다리 두개가 이렇게 많은 마디로 연결이 돼 있었다는 걸 알려주려는 듯 마디마디마다 비명을 지른다. 내 몸이 만일 조립식 책상이었다면 사지를 하나씩 몸통에서 떼어내 따로 보관했다가 다시 붙이고 싶다.
몸살은 나흘 간 계속되었다. 아프지 않았을 때 그렇게 무심했던 주인을 원망하며, 몸 안팎의 모든 부속들이 제각기 ‘내가 여기에 있었다’고 소리소리 질렀다. 태어날 때부터 받은 오직 한 개의 몸을 가지고, 죽는 날까지 함께 지내야 할 유일한 이 것에 대해 나는 너무 건방졌다. 육체란 비속한 것이고 정신이나 영혼이 더 고상한 무엇이라고 무의식적으로 밑바닥에 깔려 있었던 것이다.
더 깊은 것, 더 높은 것, 더 넉넉한 것. 이 모든 더..더..더..가 마음에만 쏟아 부어졌지 몸에 대해서는 전혀 귀기울여 그 소리를 들으려 않고, ‘그러므로 나는 근사하게 살고있다’고 착각했을지 모른다. 가소롭기도 해라.
이틀째였나 사흘째였던가, 몸의 비명이 가장 높은 소리를 질렀을 때 힘겹게 돌아누우면서 내 입에서 나도 모르게 나온 말이 왜 그것이었는지 참 이상하다. 분명히 기억하는 말. 그것이 신음이었는지, 고백이었는지, 혹은 기도였는지. 내 입이 저절로 말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라고.
정확하게 그게 무슨 뜻이었는지 왜 그 말이 나왔는지는 스스로에게도 설명이 안 된다. 아파 죽겠는데, 매일 나를 휘몰아치며 끌고 다니던 만사가 다 귀찮고 팔다리를 다 떼어 던져버리고 싶게 아파 죽겠는데 뭐가 감사? 나흘째 오후가 되자 열은 물러갔다. 몸은 얇은 종이처럼 하르르 하고, 얼굴은 맑아진 것 같다. 자리에서 일어나 처음으로 부엌 식탁에 앉았다.
마주 보이는 벽 달력에 땡스기빙데이 표시가 붉게 들어왔다. 뜨거운 콩나물 해장국을 앞에 놓고 잠깐 고개를 숙인다.
몸을 주신 것에 감사, 고통을 주신 것에 감사, 아픔을 통해 깨달을 수 있는 마음을 주신 것에도 감사, 얼큰한 국물을 To Go 해다 줄 남편 주신 것 감사, 음식점 주인과 주방에 감사, 농부에게 감사, 하얀 쌀밥을 신의 얼굴 만지듯 조심스레 한 숟갈씩 퍼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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