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월드컵 열광

2002-07-02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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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리스 포먼 칼럼

지난 한달 동안은 한국신문에 월드컵과 붉은 악마라는 축구팀에 관한 기사밖에 없었다. 열 한 명의 한국 축구선수들과 한 명의 유럽계 코치가 한국국민들의 열광적인 집념의 대상이었다. 미국신문은 월드컵 뉴스를 작은 기사거리로 다루었지만 한국신문은 페이지마다 놀라운 역사를 만들고 있는 축구팀에 관한 이야기와 사진으로 채워졌다.

아내는 한국 신문을 읽다가 흥미로운 가사거리가 있으면 가끔 큰 소리로 읽어 준다. 며칠 전에 신문을 읽고 있던 아내가 "한 남자는 한국팀의 승리를 돕기 위해 자신의 몸을 불살랐다" 라고 크게 기사를 읽어 주었다. 이 열광적인 팬은 죽어서 혼이 되어 열 두 번째 팀 멤버로서 붉은 악마 팀이 승리하도록 돕겠다는 생각에서 자신의 생명을 버렸다 한다. 그 소원이 부분적으로 이루어졌을지 모르지만 그가 축구장에 있지 않았다고 나는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는 다른 붉은 악마들과 함께 유황불 속에서 고통으로 신음하고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월드컵 열기는 내가 살고 있는 지역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을 경험했다. 내가 다니고 있는 신학대학에는 한국학생들이 많다. 이탈리아와 대결하여 한국이 승리한 날, 아침 수업시간에 대부분의 한국학생들이 지각하였다. 서두르며 하나 둘 강의실로 들어오는 한국 학생들은 몹시 지쳐 보였지만 흥분된 모습이었다.


신학교에서는 수업이 시작하기 전에 교수가 학생들에게 기도 제목을 묻는다. 그 날도 평소처럼 교수는 학생들에게 하나님께 감사할 제목이 있으면 말하라고 하였다. 잠시 침묵이 흐른 후, 한 한국학생이 "한국 축구팀이 이탈리아 팀을 이긴 것을 하나님께 정말로 감사를 드린다" 라고 말했다. 클래스에 있던 열 명 정도의 한국 학생들이 그의 말에 환호하였다.

내 옆에 앉아 있던 중국학생이 낮은 목소리로 불평을 하였다. 한국 학생들 때문에 요즈음 잠을 못 잔다고. 나중에 들은 이야기로는 한국사람들이 만드는 아침 소란으로 이웃들의 불평이 늘어났기 때문에 한인학생들 집에 경고장이 배달되기도 하였다 한다.

한국인들의 심리를 이해하려고 나는 오랫동안 노력해왔다. 무엇이 한국사람들을 이처럼 일편단심의 열광자들로 만드는 것일까? 곰곰이 이 문제를 생각한 끝에 열광의 근원이 다음 세 가지의 이유가 아닐까 하고 나름대로 결론을 내려본다.

첫째, 한국사람들은 성취를 축하한다. 백일을 축하하고, 유치원 졸업식을 축하하고, 60세 환갑을 축하하고, 심지어 한글날을 축하한다. 만약에 식구 한사람이 성공을 하면 온 집안 식구들이 함께 기뻐하며 잔치를 벌이고 축하한다. 이번 월드컵 경기때도 온 국민이 한가족이 되어 이기고 있는 한국팀의 성공을 축하하며 축제를 벌였다 .

둘째, 한국사람들은 애국심이 매우 강하다. 그러면서도 자기 나라에 대한 자긍심이 약하다. 이것은 참으로 이상한 콤비네이션이다. 나의 한인친구들은 자신이 한국인임을 무척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그러나 그들과 대화를 어느 정도 하다보면 자기나라가 얼마나 약한가를 알게 모르게 인정하며 자신의 나라를 낮게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한국 사람들의 관념 속에 한국은 중국, 일본, 그리고 소련과 함께 큰 대양에서 수영하는 작은 물고기라는 생각이 깊게 자리잡혀 있는 것 같다. 역사적으로 한국은 오랫동안 중국의 작은 동생, 그리고는 일본, 그 다음에는 미국의 작은 동생으로 존재하였다. 작은 동생이 나이 많고 힘이 센 형을 이기는 것을 보는 것은 통쾌한 일이다.

셋째, 한국 사람들은 집단 중심이다. 모두가 집단에 속하여 함께 행동하기를 원한다. 경기는 선수 열 한 명만이 할 수 있지만 나머지 사천 오 백 만 명의 한국인들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어떤 사람들은 얼굴에 태극기를 그리고 응원을 하고, 어떤 사람들은 경기장에서 쓰레기를 주우면서 팀의 일원이 된다.

장사하는 한인들은 월드컵 세일을 하고, 음식점은 공짜로 밥을 주면서 한 팀이 된다. 국민이 최소한 할 수 있는 일은 빨간 티 셔츠를 입고 박자에 맞추어 손뼉을 치며 선수들을 응원하면서 팀의 일원으로 팀을 돕는 것이다. 한국 사람들의 단체 응원은 개인주의인 서방국가 사람들에게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한국 신문의 99%가 월드컵에 관한 기사인데 나 역시 월드컵에 관한 글을 썼으니 월드컵 뉴스를 99.5%로 증가시킨 것 같아 미안한 생각이 든다. 아마 나도 한국팀의 한 일원이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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