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학교 선택권 찬반 논쟁

2002-06-29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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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의시각

종교재단이 운영하는 사립교로 전학하는 데 주로 사용되는 ‘바우처(voucher) 프로그램’이 합헌이라는 연방대법의 판결이 나오자 찬반양론이 시끄럽다. 일반 국민은 물론 미국의 대표적 양대 신문인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가 사설에게 정반대 의견을 내놓고 있어 ‘바우처 불씨’는 상당기간 지속될 전망이다.


<찬성>
자녀학교는 학부모들이 결정해야
공교육 실패로 수많은 학생들이 양질의 교육을 받지 못한다는 얘기는 더 이상 논쟁거리가 아니다. 부유층이나 중산층은 이미 자녀들을 사립교에 보냈거나 교외지역의 우수한 공립교로 전학시킨 상태다. 그러나 빈곤층은 선택의 여지가 없다.

교육을 개혁하면 그 효과가 나오는 데 수년이 오랜 시일이 소요되는 정부관료들은 종종 이를 방해하고 있어 결실을 맺기가 난망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정교분리 원칙을 너무 엄격히 적용하다 보면 바우처 프로그램 같이 잠재적으로 교육개혁에 긍정적인 실험들이 제대로 시행되지 못한다는 데 있다.


공교육 문제가 심각한 수위에 이른 클리블랜드의 바우처 프로그램에 대해 대법원이 합헌 판결은 내린 것은 주정부, 지방정부, 그리고 의회가 바우처 프로그램을 보다 주의 깊게 고안해 낼 수 있는 여지를 마련해 주었다는 의미를 지닌다.

바우처 프로그램이 위헌이라고 주장한 대법관들은 이 프로그램이 정교분리의 종식을 예고한다는 이유를 내세웠다. 우리는 분명 이같은 위험을 과소 평가하는 게 아니다. 현 상태에서 바우처 프로그램의 위험성을 지적하는 것은 하나의 가설이다. 그러나 현재 교육위기는 현실적인 문제다.

사실 이번 판결이 대단한 변화를 뜻하지는 않는다. 그동안 학교를 포함해 각종 민간조직을 정부가 지원했음은 다 아는 일이다. 그리고 클리블랜드 바우처 프로그램이 종교학교에 직접재정지원을 하는 게 아니다. 바우처는 학부모들에게 전해지고 학부모들은 종교학교, 매그넷 스쿨, 차터 스쿨, 일반 사립학교 등 다양한 종류의 학교 중 하나는 선택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을 고려한다면 바우처 프로그램이 수정헌법 1조에게 금지하고 있는 종파 설립과는 무관한 것이다.

워싱턴DC의 공교육 시스템도 이와 유사한 프로그램을 적용해 일례로 모튼 초등학교의 지난해 학생들의 성적이 현저히 증가했다. 모튼 초등학교는 남자반 여자반을 따로 하고 점심시간을 줄였다. 스탠포드 9 시험결과 독해와 수학에서 우수학생으로 분류된 학생의 비율이 1 년 만에 거의 2배로 늘어난 것이다.

물론 이같은 결과를 일반화하려면 추가 연구가 필요하겠지만, 공립교가 어떻게 운영돼야 하는가 하는 문제에서부터 사립교에 들어갈 기회를 확대하는 문제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접근법을 시도해 보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는 점이다. 바우처는 일부 학생들에게 이에 대한 답변을 제시할 수 있다. 정책결정권자들이 묘안을 구상하는 데 헌법이 걸림돌이 돼서는 곤란하다.

실제로 우리의 쟁점은 클리블랜드의 바우처 프로그램 자체에 국한되지 않는다. 보다 근본적인 것은 경쟁을 통해 창출될 수 있는 것이 무엇이며, 학부모들이 자녀교육을 위해 어떤 기회를 가져야 하는가 하는 명제이다. 사립교를 선택하는 학생들은 1인당 8,000달러의 바우처를 받게 되고, 공립교는 나름대로 미국사회가 투자하는 만큼의 질 좋은 교육을 학생들에게 제공하기 위해 노력해야만 한다는 점이 중요한 것이다.
워싱턴포스트

<반대>
공립교의 민주주의 교육기능 훼손
미국은 지난 수년간 연방대법원이 바우처 프로그램에 대해 어떤 판결을 내릴지 궁금해하며 기다려왔다. 대법원은 어제 5대 4로 클리블랜드의 바우처 프로그램을 지지하는 판결을 내렸다. 그러나 이는 헌법의 측면에서나 미국의 교육적 측면에서 볼 때 모두 잘못된 결정이다.


이론적으로 클리블랜드의 바우처 프로그램은 학생들이 주정부 기금을 사용해 자신이 원하는 학교에 갈 수 있도록 허용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이같은 선택은 사교육과 실패한 공교육 시스템 사이에서의 선택이다. 이는 헌법이 의도하는 세금 사용방법에는 맞지 않는다.

클리블랜드 바우처 프로그램의 문제점은 우선 교육기금의 액수에 있다. 연간 최고 2,250달러를 지원해 봐야 대부분의 사립교의 학비를 충당하기엔 턱없이 적은 액수다. 그러나 이런저런 이유로 종교학교로 간다면 학비가 비교적 저렴해 시도해 볼만할 것이다. 그래서 96.6%의 학생이 종교재단이 운영하는 사립교로 결정하고 있다.

이들 종교학교에 들어간 학생들은 원하든 원치 않든 이들 학교가 규정한 종교훈련을 거부할 수 없다. 수정헌법 1조가 각 주정부로 하여금 금지한 상황이 초래되는 것이다. 많은 경우에 학생들은 미사나 다른 종교의식에 참여해야 한다. 온 국민이 낸 세금이 성경, 기도서, 십자가, 그리고 다른 성물을 구입하는 데 쓰이게 된다. 납세자가 낸 돈으로 어린 학생들에 특정 종교의 교리를 주입시키는 것보다 더 정교분리 원칙에 위배되는 것은 생각하기 힘들다.

대법원의 다수의견은 클리블랜드의 바우처 프로그램이 수정헌법 1조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 이유로 돈을 어디에 쓸 것인가는 정부가 결정하는 게 아니라 학부모에 달렸다 점을 들었다. 그러나 클리블랜드의 교육현실을 감안하면 부모들은 별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세금이 어떤 경로로든 종교훈련을 지원해서는 안될 것이다.

이번 결정은 수정헌법 1조뿐 아니라 교육 자체에도 해롭다. 바우처 프로그램을 지지하는 일반적인 논리는 이 프로그램은 공립교로 하여금 학생유치를 위해 경쟁하도록 유도해 결국 공교육을 개선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공교육의 질 저하는 경쟁력 결여 때문이 아니라 의 성공하기 위해 필요한 재원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바우처 프로그램은 양질의 교사와 교재, 컴퓨터를 위해 필요한 재원은 물론, 좋은 학생과 열심히 봉사하는 학부모를공립교에서 빼 내가는 결과를 낳는다.

어제의 결정은 또한 민주주의와 다원주의 교육이라는 공교육의 기본적인 기능을 훼손시킨다. 다양한 배경을 갖고 있는 학생들이 함께 공부하는 곳이 공립교이다. 종교학교들은 저마다 자신들이 가르치는 것이 진리라고 주장할 것이다. 소수의견을 낸 폴 스티븐스 대법관은 "우리가 정교분리를 위해 쳐 놓은 담의 벽돌을 제거할 때마다 종교적 다툼은 심화되고 민주주의의 기초는 약화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대법원의 판결은 많은 벽돌을 제거한 셈이다.
뉴욕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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