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상식에 어긋난 고법 판결

2002-06-28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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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의 시각

반세기 전 미국 내에서 반공열기가 뜨거울 때, 미 의회는 종교를 믿지 않는 소련에 대항해 애국심을 종교적인 경건함과 접목시키려 국기에 대한 맹세에 ‘하느님 아래’라는 표현을 삽입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고 이를 반복적으로 암송하면서 이 구절은 미국생활의 골간이 돼 버렸다.

그런데 어제 연방 고등법원이 이를 위헌이라고 판시했다. 공립교에서 "신이 존재한다"는 내용이 포함된 구절을 학생들에게 매일 복창하게 하는 것은 잘못이란 것이다. 의회가 종교적 색채를 띤 법을 제정하는 것은 수정헌법 1조에 위배된다는 논리다. 이 판결은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으나 상식에는 어긋난다고 본다. ‘하느님 아래’라는 표현은 종교적인 기도가 아니라 사회의 관습적인 의식의 하나일 뿐이다. 소송을 제기했던 뉴도우의 딸은 이 구절을 암송하도록 요구받지 않고 국기에 대한 맹세조차도 요구사항은 아니다.

이번 판결은 정치적인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우리는 1954년 이 구절이 삽입되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이제 와서 안착한 구절을 빼내려한다면 득보다 실이 더 클 것이란 점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더 중요한 것은 이번 판결이 헌법의 정교분리 문제를 희석시키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는 점이다. 학교에서의 단체 기도행위 등 이슈들을 다뤄야 하는 데 말이다. 이러다 자칫 수정헌법 1초의 진정한 의도가 퇴색될까 우려된다.


뉴욕타임스 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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