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이젠 한인사회 차례다

2002-06-25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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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론트라인>

▶ 박봉현 편집위원

한국 축구는 국제축구연맹이 매긴 서열에서 40위다. 그런데 전문 도박사
들까지 놀라게 하면서 당당히 정상그룹으로 치솟았다. 미주 한인은 어림
잡아 200만명이라 해도 미국 인구 약 3억명 가운데 0.6%가 조금 넘는다.
인종별 인구수로는 한국 축구의 랭킹처럼 바닥권이다.
하지만 한국 축구의 웅비는 한인사회의 성장 가능성을 높였다. 뿌리가 같
으니 한국팀처럼 하면 ‘홈구장 이점’이 전무한 미국 땅이지만 해볼 만하
다는 시그널이다. 소수계로서 미국을 움직이는 유대인들의 성공담이나 탈
무드를 그저 재미로만 읽을 게 아니다.

’태극 전사들’의 대약진은 "할 수 있다"는 정신력을 깔고 있다. 일류급 선
생을 붙여주고 지원을 퍼부어도 눈동자가 풀린 학생에게서 좋은 성적을
기대할 수는 없다. ‘기회의 나라’인 미국이지만 이를 활용하려는 열의와
밀어붙이는 투지가 없다면 만년 ‘실망의 나라’로 여겨질 뿐이다.
한국팀의 선전은 한민족이 달고 다닌 ‘모래알’이란 오명을 날려 버렸다.
붉은 악마와 온 국민의 응원, 미주한인들의 북받치는 성원에서 "우리도
하나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됐다. 한국팀의 승리를 비는 한마음은
한인사회의 공동체 의식으로 승화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선 지금 이 단
합을 월드컵 대회 폐막과 동시에 흩트리지 않고 두고두고 이어가야 한다.
불화가 고개를 들라 치면 ‘그때의 함성’을 되새겨야 한다.

한국팀에는 운이 따랐다. 그러나 운은 준비된 사람에게만 오는 법이다.
아무 생각 없이 살다 보면 운이 가까이 와도 잡지 못한다. 능력껏 최선을
다할 때 운도 가세해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것이다. 햇볕이 잘 내리쬐
고 비가 적당히 온다 해도 콩을 심지 않으면 콩나물 비빔밥은 식당 메뉴
에 오르지 못한다. 타고난 영리함과 몸에 밴 근면함을 잘 배합하면 언젠
가 이 사회를 이끌 수 있을 것이다.


맡은 분야에서 으뜸이 되려는 자세가 한국팀을 돋보이게 했다. 잘 드러나
지 않는 수문장이지만 제 역할에 충실했던 이운재 선수의 선방에 박수를
아끼지 않은 것은 바로 전문성에 대한 그의 애착을 평가한 것이다. 우리
는 "엽전들은 할 수 없어"라며 자조하는 데 익숙하다. 하지만 겸손함이면
몰라도 자기비하는 더 이상 어울리지 않는다. 응원 관중들의 질서의식만
보아도 그렇다. 응원장에서 보여준 성숙함엔 주류사회도 박수를 보냈다.
이젠 ‘우리’를 온전히 계발하는 일만 남았다.

실력이 출중해도 독불장군은 오래 버티지 못한다. 한국팀은 한 선수에 문
제가 생기면 ‘백업 시스템’으로 누수현상을 막았다. 한인사회에도 이 ‘백
업 시스템’을 응용할 만하다. 정치력 신장을 위해 언어에 불편함이 없는
2세 단체와 경륜 있는 1세 단체가 밀어주고 잡아주며 상호보완하면 어려
워 보이는 문제도 의외로 술술 풀릴 수 있을 것이다.

오늘의 한국팀을 말할 때 감독의 리더십을 빼놓을 수 없다. 지도자의 중
요성을 새삼 일깨웠다. 장한 일을 한 아들이 기뻐하며 아버지에게 달려가
듯, 골을 넣은 선수가 감독에게 뛰어가 품에 안기는 모습은 그 리더십을
전해주는 ‘소리 없는 웅변’이다. 한인사회의 단체장, 기업가들도 ‘아버지 같은 지도자’가 되도록 자신을 돌아보아야 한다. 이는 조직의 역동성을 살리고 구성원의 사기를 올리는 윈-윈 전략이다.

’붉은 전사들’은 우리에게 타인종과 가까워질 수 있는 기회를 선사했다.
히스패닉이나 아시안, 심지어 미국인들까지 ‘코리아 빅토리’를 연호했다.
그들에게 장학금을 주거나 그들의 행사에 헌금해도 생기지 않을 자연발
생적 호감이다. 그런데 붉은 티셔츠를 나눠줄 때 타 인종에게 싸늘하게
대한 것은 참으로 아쉬운 처사였다. 이들을 우리 응원단으로 끌어들이는
큰마음을 드러냈어야 했다.
꼭 축구가 아니더라도 앞으로 있을 빅 이벤트에는 이들도 함께 어우러지
게 했으면 한다. ‘남의 나라’에서 친구를 얻는 것보다 소중한 것은 없을
테니 말이다.
bongpark@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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