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손가락질

2002-06-13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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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리스 포오먼 칼럼

▶ <교육학 박사>

어렸을 적에 어머니는 우리 형제들에게 남에게 손가락질을 하지 못하도록 훈계를 하셨다. “한 손가락이 남에게 향하고 있을 때 세 손가락이 너를 향하여 있다는 것을 기억하라” 하고 주의를 주셨다.

지난 주말에 미국을 방문하고 있는 한국인 친구와 함께 공원길을 걸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나의 칼럼이 화제에 올랐다 (아내가 칼럼을 보여주었다 한다). 나의 칼럼에 대한 친구의 코멘트는 친절하고 관대하였는데, 대화가 좀더 길어지면서 나는 자존심이 상한 그녀의 심경을 감지할 수가 있었다. 내가 한국을 비판하고 있다고 오해하고 있는 것 같았다.

친구는 한국에 오래된 건물이 많이 있다고 말하면서 한국에 관한 나의 짧은 지식을 지적하여주었다. 한국에서 유적물이 깊은 역사에 비해서 외국인의 눈에 쉽게 보이지 않아 아쉬웠다는 나의 소감을 썼던 글에 대한 코멘트였다. 그녀는 미국이 한국에 비하여 얼마나 뒤떨어지고 있는지 정말 놀랍다고 소감을 말했다. 그녀가 머물고 있는 호텔방에 인터넷 커넥션조차 없다는 것, 샌프란시스코 길거리에 거지들과 홈리스들이 너무 많다는 것, 미국은행이 한국은행처럼 전산화가 되지 않아 불편하다는 것, 백인들이 아메리칸 인디언을 차별하였다는 것 등 미국에 대한 비판이었다.


“미국이 그처럼 나쁘면 왜 수많은 한국사람들이 미국에 오려고 애를 쓰느냐?”하고 농담반 진담반으로 나는 그녀에게 물었다. 그녀의 반응이 재미있었다. “한국에서 못살고 실패한 사람들이나 미국에 와서 살려고 하지 잘 사는 사람들은 오지 않는다”라고 단호하게 대답하였다. “흠, 내가 만난 한인 교포들이 못사는 사람들 같지 않던데...”라고 받아 넘겼다.

한창 열띤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앞서가던 관광객이 입에 손을 대면서 조용히 하라는 신호를 하였다. 아마 우리들의 대화가 생각 보다 컸나 보다. 토론을 중단하고 하늘을 찌르듯이 높이 솟은 레드우드의 아름다움을 지적하였다. 레드우드 숲이 아름답다는 코멘트는 물론 논쟁의 여지가 없었다.

한국인 친구와 나눈 대화를 떠올리면서 나의 칼럼이 혹시 한국을 비판하는 글로 보여서 본의 아니게 내가 손가락질하는 셈이 된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세 손가락이 나를 가리키고 있다는 어머니의 말을 생각하면서 나의 글이 한인 독자들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였다면 사과하고 싶다. 한국에 관한 나의 견해를 솔직하게 쓰려고 노력하다보니 나의 글이 가끔 한국사람들의 귀에 거슬리고, 주제넘고, 건방지게 보였을지도 모른다.

한국은 나의 제2 조국이다. 한국 사람들을 좋아하고 음식을 좋아하고, 한국음악을 (요즘 한국서 유행하는 음악은 빼고) 좋아한다. 젊은 시절 한국에서 보낸 2년은 나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였음을 고백한다. 현재도 나는 매일 한국을 경험하면서 살고 있다. 한인 아내와 살면서, 한인 성도들과 함께 선교활동을 하면서 나는 한인문화에 젖어 살고있다.

자신을 좀 더 이해하기 위하여서는 타인의 눈에 반사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는 것도 필요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한사람의 외국인의 눈에 비치어진 한국과 한국인에 대한 이야기가 자존심 상하는 이야기로 그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미국에 사는 한인 독자들에게 한국과 미국을 잇는 다리를 놓는데 필요한 통찰력으로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것이 나의 진정한 마음이다.

만약에 독자들 중에 나에게 지적하여 주고 싶은 말이 있으면 전자메일을 주기를 바란다. 나의 칼럼에 대한 불만이나 제안할 일, 또 미국사람들이 왜 그렇게 행동하는 가하고 궁금한 점이 있으면 알려주기를 바란다. 최선을 다하여 설명하도록 노력하고 싶다. 나의 어머니의 충고처럼 손가락이 누구를 가리키고 있는지 기억을 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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