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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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색깔 국가대표팀

2002-06-11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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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의 시각

▶ 데슨 하우 워싱턴 포스트 칼럼

어느 영화에 나온 말을 좀 바꿔본다면 나는 아침에 맡는 축구냄새를 좋아한다. 한국과 일본에서 열리는 월드컵 경기 생중계방송을 새벽 2시30분, 5시30분, 혹은 7시30분에 시청한다는 말이다.

잠 못자서 충혈된 눈으로 경기를 보노라면 한가지 눈에 띄는 점이 있다. 축구의 세계에서 국적은 점점 다양한 색채로 뒤섞여진다는 것이다.
월드컵은 지구상에서 가장 인기있는 스포츠이기만 한 게 아니라 국가적 자존심이다.

영국이나 축구를 좋아하는 모든 다른 나라가 국가대표팀에 열광적이 되는 것은 오랜 시간에 걸친 전통이다. 영국 팬들은 영국이 1966년 차지한 월드컵 우승의 영광을 되풀이하기를 바라면서 나이를 먹어왔다.


그런데 1966년 영국 선수들이 웸블리 스태디엄을 누비고 다닐 때 피부색이 검은 선수는 없었다. 하지만 35년이 지나면서 영국과 아일랜드의 리그들은 백합 같은 흰색에서 무지개로 바뀌었다. 오늘날 영국팀 23명 중 9명은 흑인 선수들이다.

메시지는 분명하다. 선수가 처음 어디서 축구공을 차기 시작했건 상관없이 모두가 여전히 자기 나라 팀을 자랑스러워한다는 것이다.

영국 리그내 악명높은 인종차별주의의 역사에도 불구하고 흰 셔츠를 입은 선수들중 여러명이 아프리카나 카리브해안 출신이라는 사실에 의아해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선수와 팬들이 반드시 겉모습이 같아야 한다는 건 점점 별로 문제가 되지 않고 있다. 마음이 어디에 있느냐가 문제일 뿐이다.

프랑스와 세네갈 경기를 보면 선수가 어떤 셔츠를 입고 있느냐가 어느 팀인지를 구별하는 유일한 길이었다. 양쪽 팀 모두 외국 출신 선수들로 잔뜩 채워져 있기 때문이었다.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미드필드 선수중의 하나인 패트릭 비에라는 세네갈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푸른색 셔츠를 입고 프랑스 팀으로 뛰었다. 그와 함께 나폴레옹과 르펜의 나라를 위해뛴 선수로 지네딘 지단은 마르세이즈에서 알제리 이민자를 부모로 태어났다.

축구팀의 다문화 주의는 프랑스에서 그치지 않는다. 가나에서 태어난 선수가 독일을 위해 뛰고, 나이지리아 태생이 폴란드대표팀 셔츠를 입고 뛴다. 브라질인이었던 알렉스는 2001년 일본 시민권을 받은 뒤 현재 일본 팬들의 응원을 받으면서 공을 몬다.

감독이라고 다르지 않다. 한때 미국, 멕시코, 코스타리카등지의 감독이었던 유고슬라비아-세르비아계 보라 밀루티노비치는 현재 중국 감독, 남아공, 아이보리 코스트 감독이었던 프랑스인 필립 트루시에는 현재 일본 감독이다. 한편 한국팬들은 네델란드 태생 거스 히딩크감독의 한국 귀화를 촉구하고 있다.

이번 월드컵에서 확연해진 것은 축구장에서 국민 정체성이란 피부색이나 다른 문화적으로 구별가능한 마크라기 보다 마음의 상태라는 사실이다.

이런 추세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19세기식 아프리카와 카리브해 식민지화 같은 것인가. 미국식의 멜팅팟 정체성 같은 것일까. 상업적 팀 구성의 결과일까.
민족주의를 넘어선, 세계의 미래를 위한 가장 큰 희망이 될 어떤 이상하고도 멋진 현상이 아닐까?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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