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영어가 만든 고아들

2002-05-30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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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리스 포오먼 칼럼

▶ <샌프란시스코주립대 교수>

영어가 나의 모국어인 것을 축복으로 생각한다. 여러 나라를 여행하면서 언어 때문에 불편을 격은 일이 없다. 어느 나라에서도 호텔이나 박물관, 또는 관광업소에서 영어를 하는 사람을 쉽게 찾을 수 있기 때문에 그들의 언어를 애써 배우지 않아도 통화가 된다. 한편으론 내가 외국어를 배우는 일에 게을리 하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나는 독일어, 프랑스어, 라틴어, 한국어, 희랍어를 배우기 위해 클래스에 정식으로 등록하여 배우려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어느 한 언어도 그 나라 사람과 유창하게 통화할 수 없는 것이 부끄럽다. 나의 한국어 실력보다 한국사람들의 영어실력이 훨씬 좋기 때문에 인사를 나눈 후에는 거의 영어로 통화하게 된다.

1950년 미국 군인들이 한국 땅에 발을 딛기 시작하면서부터 한국 사람들은 영어를 배우려고 노력하였다. 나 역시 한국 사람들이 영어를 배우려는 열정의 한 파트를 담당한 셈이다. 케네디 대통령 시절 미국 청년들을 평화봉사단으로 한국에 보냈을 때, 한국 정부는 미국 정부에 두 종류의 지원자를 요청하였다. 보건소에서 일할 수 있는 의료계 봉사자와 영어교사였다.


1970년 초반에 나는 충청북도에 있는 중학교에서 영어선생을 하였다. 거의 2년 동안을 ‘R’과 ‘L’을 구별하여 발음하도록 가르치는데 시간을 보냈다.
1980년에 대학교수로 다시 한국에 갔을 때도 나의 전공인 교육학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영어였다. 24시간 일하려고 하였다면 할 수도 있었다. 학생, 사업가, 심지어는 공장 매니저들까지도 영어를 가르쳐 달라고 했다. 영어를 잘하기 위해 영어 사전을 베개 밑에 놓고 잔다는 학생도 있었다.

한국 사람들이 영어를 배우려는 열정이 근래에 들어 더욱더 심해진 것 같다. 지난 몇 년 동안 어린 자녀들을 미국 또는 영어를 사용하는 나라로 보내는 부모들이 늘어났다 한다. 엄마는 자녀와 함께 미국에 살고, 아버지는 한국에서 혼자 살면서 두 집 살림을 하기도 하고, 어린이들이 혼자 이 곳에 와서 친척집에서 또는 낯선 사람 집에서 하숙을 하면서 학교를 다닌다는 말도 들었다. 이 아이들은 영어를 배우기 위해서 고아들이 된 셈이다.

가족과 떨어져서 산다는 것을 나로서는 상상할 수가 없다. 어린 자녀가 부모와 떨어져 살아야 하고 아내가 남편과 떨어져 살아야 할 만큼 ‘유창한 영어’의 가치가 있는 것일까? 한국 사람들의 심리를 깊이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과연 이러한 방법이 진정으로 자녀를 위하는 것일까?

이기적인 생각인지는 모르지만, 나의 인생에서 가장 좋았던 시절이 아이들과 보낸 시간이었다. 아이들과 야구놀이 하고, 함께 캠핑 가고, 아이들의 사소한 일에 관여하면서 그들이 성장하는 것을 지켜보는 경험을 세상의 어느 경험과 바꿀 수 없다. 영어 때문에 어린 자녀들과 떨어져 사는 한국부모들이 부모자식간에 두터운 정이 가져다 주는 금메달을 인식하지 못한 채 ‘유창한 영어’라는 은메달을 추구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영어를 잘해야 한다는 욕망이 광적인 수준에 이른 것을 최근 신문기사를 통해 알게 되었다. 영어를 미국 사람처럼 완전하게(?) 발음하기 위하여 어린 자녀의 혀를 수술한다는 말은 믿어지지가 않는다. 혀를 수술한다고 영어발음이 잘된다고 믿는 사람들이 정말로 있을까? 이 사람들은 언어가 진정으로 혀에서 만들어진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수많은 한국계 미국인들이 영어를 유창하게 잘 하지 않는가? 그 사람들이 가진 혀는 한국 사람들의 혀와 다르단 말인가?

이 글 첫 머리에 영어가 나의 모국어인 것을 축복이라고 말하였다. 이 말이 사실이지만, 더 큰 축복은 가족과 함께 살 수 있다는 것이다. 만약에 유창한 영어와 가족과 함께 사는 것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면 나는 서슴없이 영어를 포기할 것이다. 중국말, 프랑스어, 스와힐리, 또는 한국말만 한다고 나쁠 것은 없지 않은가. 정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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