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세기 전 서울여의대 1회 졸업…주류사회에서만 생활
반세기 전에 미국으로 유학와 40년 이상을 시애틀에서 소아과 의사로 일해온 시애틀 최초의 한인 여의사가 은퇴 후 뒤늦게 한국과 한인사회 배우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시애틀 칠드런스 병원에서 20년 이상 소아과 진료를 해온 양정숙(72, 미국명 프리스실라 로버츠)씨는 미국인 남편과 한인사회에서 동떨어져 살아왔으나 은퇴 후 한인사회에 관심을 갖게됐다고 말했다.
마운트 테라스의 자택에서 기자와 만난 양씨는 6.25동란 중 한국 최초의 여자 의대인 서울 여자 의과대학(현 고려대학)을 졸업(1회)했으며 53년 부산에서 미국인 의사의 도움을 받아 노스 캐롤라이나주 바우만 그레이 의대에 유학 올 수 있었다고 밝혔다.
평양 출신으로 12세에 가족과 헤어져 서울서 홀로 이화여고를 다닌 양씨는 대학 졸업 후 부산 피난 시절 성공회가 세운 병원에서 월터 코크 의사를 만난 것이 인생의 전환점이 됐다고 회상했다.
당시 한국 여성으로선 드물게 이 병원 인턴으로 일했던 양씨가 너무도 열심히 공부해 이 미국인 의사가 양씨의 미국 유학을 알선했다는 것.
“배우겠다는 욕심에서 미국 행을 결정했으나 앞을 봐도 뒤를 봐도 한국 사람이란 찾아 볼 수 없어 무척 외로웠다”는 양씨는‘Your patient kicked the bucket’라는, 사전에도 없는 속어를 못 알아들어 옆방에 물 양동이를 찾으러 간 적도 있었다며 웃었다.
이 속어는‘ 당신 환자가 죽었다’는 뜻이라고 양씨는 설명했다.
60년부터 시애틀 칠드런스 병원에 근무하면서 워싱턴 대학을 졸업한 미국인과 결혼, 슬하에 2남1녀를 둔 양씨는 61년 홀로 살던 어머니 이춘열씨를 초청, 1995년 100세 잔치를 벌여 한인사회에 잠시 소개되기도 했다.
어머니 생전에는 잠시 한인 교회에도 나가봤으나 말이 잘 안 통해 답답했다는 양씨는 한국 음식점에서 메뉴판을 얻어와 한국 음식 이름과 만드는 법을 배우며 여생을 한국 배우기에 전념하고 있다.
양씨는 지난 18일이 자신이 졸업한 서울 여자의과 대학 1회 졸업 50주년이라며 졸업 후 지금까지 소중하게 모아둔 사진들을 보여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