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는 곧 생명이다. 그래서 피를 주는 것은 곧 생명을 구하는 일이다. 그러나 생명을 구하려는 선행이 남을 극도로 절망케 할 수 있음을 어제‘타코마 한인회 린다 김 살리기 운동본부’가 팩스로 보내온 자료를 보고 깨달았다.
워싱턴주에서 린다 김 살리기 골수기증 캠페인에 참여한 한 한인의 골수가 다른 주에 있는 백혈병 환자 조직과 일치하는 것으로 밝혀졌으나 본인이 기증을 거절했다는 내용이다.
기자도 캠페인 첫 날 팔을 걷고 피를 뽑아내는 기다란 바늘을 응시하며“나로 인해 세상을 바꿀 수는 없으나 나로 인해 세상을 다시 살 수 있는 사람이 생길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새로운 삶을 즐길 사람이 초등학교 교사이건, 다른 사람이건 상관없다. 어느 쪽이 됐건 귀중한 생명을 구한다는 데는 변함이 없을테니까...
그러나, 이 팩스를 보면 기자와 생각이 다른 사람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나는 오로지 린다 김씨에게만 기증하겠다”고 우긴다고 기증자의 선택이므로 어쩔 수 없다.
서북미에서 벌어진 캠페인에 참여한 한인들이‘남들이 하니까’라는 분위기에 떠밀려 채혈에 응했을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린다 김씨에 대한 연민으로 채혈 바늘이 팔뚝에 꽂히는 것을 허용했을 것이다.
린다 김은 이제 더 이상 개인의 이름이 아닌 골수를 기다리는 백혈병 환자들의 대명사이다. 김시에 대한 연민은 미지의 다른 백혈병환자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돼야 마땅하다.
타 주의 백혈병 환자는 며칠 사이 천국과 지옥 사이를 왕래했을 것이다. 같은 형질을 찾았다는 희망과 형질의 주인공이 기증을 거절했다는 절망 속에서 그 속내도 성겨진 머리만큼이나 공허해졌을 것이다.
한사람을 구하겠다는 숭고한 뜻이 다른 사람을 더욱 아프게 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며 신체장기 기증을 결정해야 할 것이다.
내게는 재생되는 단순한 신체조직이지만 그들에게는‘생명’이상의 가치를 갖는다.
/정락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