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경찰의 ‘불체자 체포’는 부당

2002-05-09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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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의시각

▶ 제임스 린지·오드리 싱어/뉴욕타임스 기고

부시 행정부는 이민법들을 집행하는 데 있어서 주 및 지역경찰의 역할을 확대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아가고 있다. 이같은 움직임이 테러와의 전쟁의 일환으로 정당화될지 모르겠지만, 테러범들을 제어하지 못하고 오히려 이민자 커뮤니티를 놀라게 할 뿐이다.

현행법에 따르면 이민법 집행은 전적으로 법무부 소관이다. 주 및 지역경찰은 불법으로 미국에 들어온 사람이라도 체포할 수 없다. 경찰은 이처럼 업무가 구분돼 있는 것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만일 경찰이 이민법 집행에 시간을 빼앗긴다면 이민자들과의 관계 악화는 물론, 고유의 업무인 ‘범죄와의 싸움’에 그만큼 소홀하게 될 것을 우려한 때문이다.

연방의회는 지난 66년 법무장관으로 하여금 주 및 지방정부와 협약을 맺어 경찰력을 이민법 집행에 사용할 수 있도록 권한을 부여했으나 그동안 이민자 옹호단체와 비즈니스 그룹 등의 반대로 실행에 옮겨지지 못했다. 그런데 이 법이 뉴욕테러 사건 이후 새롭게 힘을 받기 시작한 것이다.

부시 행정부는 이 법이 다시금 작동하기를 기대하고 있다. 플로리다주가 이 사안에 있어서 부시 행정부와 같은 생각이고 사우스캐롤라이나 주의회도 플로리다의 뒤를 따를 채비다. 법무부도 경찰의 불법체류자 체포권을 인정한다는 방침이다. 이렇게 되면 전국 60만여명의 지역 경찰이 불법체류자들을 맘대로 체포하게 되는 상황이 현실화될 수 있다.


경찰에 불법체류자 체포권 부여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법무부 산하기관인 이민국이 테러범들을 소탕할 충분한 인력이 없다는 점을 들고 있다. 하지만 불법체류자 단속에 관심이 없던 경찰에 이같은 임무를 하달한다고 해서 테러를 막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현재 미국에는 8,000만명의 불법체류자가 살고 있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9·11’ 이전부터 경찰에 불법체류자 체포권을 부여했다고 해도 테러는 막지 못했을 것이다. 테러범 19명은 모두 합법체류 신분이었기 때문이다. 비자 규정을 어긴 일부 테러범을 잡기 위해 불법이민자들을 타겟으로 삼는 것은 득보다 실이 클 것이다. 교통위반으로 적발한 불법체류자를 모두 체포한다면 경찰은 업무를 감당해 내지 못할 것이다.

또 경찰의 단속과정에서 인종차별이 발생할 소지가 다분하다. 시민권자임에도 불구하고 유색인종들이 무차별 단속의 대상이 되고 이로 인해 소수계 커뮤니티에 힘들여 쌓아온 경찰의 이미지가 다시 추락할 수 있다. 실제로 지난 뉴욕테러 사건 이후 일부 경찰은 수천명에 달하는 아랍계 주민을 조사하라는 법무부의 지시에 따르지 않았다. 아랍계 주민들이 경찰의 보호가 필요한 상황에서도 경찰을 부르지 않았던 점은 주목할 만하다.

부시 행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정책전환은 대다수 합법체류 신분인 이민자들과 다른 모든 국민들과의 간극을 넓힐 뿐이다. 나라가 하나로 뭉쳐야 할 때에 말이다. 테러를 물리치기 위해 이민법 시행령을 개정하는 것은 불필요하다. 경찰에 불법이민자 체포권을 부여하는 대신 이민국 요원을 증원해 경찰과 이민국의 전통적이고 합리적인 업무 분할을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우리가 경계하는 것은 테러범이지 이민자가 아님을 분명히 직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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