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경기 과연 좋아지나

2002-05-01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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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의 시각

▶ 폴 크루그먼/ 뉴욕타임스

지난 금요일 연방 상무부는 올 1/41분기 미 경제가 5.8% 성장했다고 발표했다. 그 소식을 듣자 다우는 1만 포인트 밑으로 떨어졌다. 9·11 테러 이후 미 증시가 이처럼 폭락하기는 처음이다.
어째서일까. 어쩌면 이라크 공격이 임박했다는 뉴스 때문인지도 모른다. 아니면 증시가 뭔가 잘못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이번 경제 성장률은 실망스러운 수치이다. 5.8% 성장이 어째서 실망스러우냐고 생각하는 사람은 내 설명을 잘 듣기 바란다. 한 달에 100개 부품을 만드는 공장이 있다면 이 공장은 한 달치 판매를 예상해 100개를 창고에 쌓아둔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판매가 90개로 줄어들었다고 가정하자. 이 회사가 판매가 줄었다는 사실을 아는 것은 한 달이 지나서이다.

100개를 만들었는데 90개밖에 못 팔았으므로 창고에는 110개의 재고가 쌓이게 된다. 남는 물건을 처분하기 위해 다음 달에는 이 공장은 70개밖에 물건을 만들지 않는다. 재고를 처분한 그 다음 달에는 다시 생산량을 90개로 늘린다. 생산이 늘기는 했지만 원래 수준을 회복한 것은 아니다. 이 공장의 예를 미 경기에 적용할 수 있다. 수요가 줄면 재고는 쌓이고 업체는 이를 정리하기 위해 생산을 줄인다. 그 다음달에 생산을 늘리면 외형상으로는 성장한 것 같지만 실제로는 원래 수준에도 미치지 못한 것이다.


미 경제 성장률 5.8% 중 절반 이상은 재고 정리 후 증산에 기인한 것이다. 실질적인 경제 성장은 전 분기에도 못 미치는 2.6%에 불과했다. 그나마 이 정도의 성장도 계속하기 힘들 전망이다. 이상 난동으로 과열 현상을 보이던 주택 건축 열기도 냉각 조짐을 보이고 있다. 게다가 과잉 투자와 이윤 감소에 시달리고 있는 업체들은 투자를 오히려 줄이고 있다. 가까운 장래에 급속히 경기가 회복될 조짐은 보이지 않는다.

이것은 놀랄 일이 아님에도 그 동안 숱한 경기 예측가들이 낙관적인 전망을 내놓은 탓에 놀랄 일인 것처럼 보인다. 월가의 경제학자들은 비즈니스 투자가 급증할 것으로 전망했으나 막상 투자를 해야할 기업 중역들은 이들보다 경기를 비관해 왔다.

그럼에도 전문가들은 낙관적 전망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 않은 사람은 조롱의 대상은 물론, 그룹 내에서 도태되기 때문이다. 나스닥이 5,000을 헤아렸을 때 유일하게 회의적인 반응을 보인 모건 스탠리의 스티븐 로우치는 자기 e메일 뒤에 ‘광야에서’라는 사인을 해서 보낸다. 물론 낙관론자가 맞을 수도 있다.

그러나 경기가 회복되지 않을 가능성도 이에 못지 않다. 향후 수개월간 가장 유력한 시나리오는 일자리 창출이 없는 경기 회복이다. 실업률 악화를 막기 위해서는 경제가 3.5% 이상 성장해야 한다. 그러나 그렇게 될 가능성은 절반 이하다. 일자리 없는 경기 회복은 연방 준비제도 이사회를 비롯한 제 정신 가진 사람들이 오랫동안 펴온 지론이다. 하이텍 버블이 터진 후 폐허가 된 월가는 아직도 정신 못 차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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