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커멘터리 21> 잠겨 있는 4·29 폭동성금
▶ 박봉현 편집위원
성금보관 구호기금재단 수년간 공식활동 없어
한인사회 십시일반 모은 돈 은행구좌서 ‘동면’
사심 의혹 떨치고 대승적 자세로 중지 모아야
’4·29폭동’을 따라 다니는 것은 피해자의 상흔과 성금 추문이다. 10주년을 맞아 아픈 기억이 상당부분 아물었다지만 성금문제 만큼은 쉽사리 잊기 어렵다는 게 중론이다. 폭도에게 당한 것이 억울하지만 성금 말썽은 같은 한인들에 의해 저질러졌으니 한층 더 울화가 치민다는 얘기다.
한인들이 크고 작은 정성을 모으고 한국 적십자가 동포애를 발휘해 합친 폭동성금은 처음엔 900만달러를 넘었었다. 이 돈이 폭동피해자들에 지급돼 110만달러 정도가 남았었고, 이 돈으로 지난 94년 구입한 건물의 가치가 폭락해 99년 매각 시 건질 게 별로 없었다고만 기억하는 한인들이 대다수다. 폭동성금에 대해 지긋지긋한 기억만 떠올릴 뿐 다시 선용할 재원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별로 없다.
그러나 현재 퍼시픽 유니온 뱅크(구 가주외환은행)의 정기예금 구좌에 22만여달러가 잠자고 있다. 지금껏 성금을 보관하고 있는 한미구호기금재단(이사장 전주찬)은 뚜렷한 사용처를 찾지 못하고 있다. "한미구호기금재단 명의로 구좌가 개설돼 있다"고 하지만 재단이 최근 수년간 활동을 하지 않고 있으니 ‘휴면계좌’나 다름없다.
공금이 묶여 있으면 의심을 산다. "왜 사용하지 않고 가만히 두느냐"는 비판을 받게 된다. 공금을 ‘눈 먼 돈’으로 여기는 걸 자주 보아온 한인들이라 삐딱하게 보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북한 쌀 돕기 모금, 한인타운 준 경찰서 설립지원 모금, SAT II 한국어 진흥기금 모금 등등 커뮤니티 캠페인이 볼썽사나운 일을 만들었으니 한인들이 민감하게 대들더라도 말리기 힘들다.
폭동성금도 예외가 아니다. 오히려 다른 성금보다 더 빈축을 샀었다. 폭동피해자에게 성금을 지급한 뒤 잔여분으로 건물을 매입했다가 부동산 가격 하락 등 때문에 투자분 90만달러가 30만달러로 줄어 60만달러가 유실됐다는 과거지사를 이제 와서 따지려는 게 아니다. 한인들이 잘 모르지만 현재 은행에 보관돼 있는 잔여분 22만여달러를 잘 사용해 그동안의 오점을 씻고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도록 이 사안을 공론화하자는 것이다.
최근 수년간 이상하리만큼 잠잠한 구호기금재단에 대해 "도대체 뭐하고 있나"하는 질문이 폭동 10주년을 맞아 적지 않게 들어온다. "재단이 혹시 딴 생각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다소 앞서가는 질문도 있다. 잔여 성금이 또 다른 잡음을 일으킬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재단이 쉬고 있는 게 우선 꼽히는 이유다. 변변한 활동을 하지 않는 재단이 공금을 계속 보관하고 있을 하등의 이유가 없다는 지적이다. "이사진이 모여 성금 사용에 대해 진지한 논의를 할 기회가 없었다"는 재단측의 시인도 의심을 살 수 있는 요소다. 재단은 성금을 선용하기 위해 구성된 것이므로 취지를 살리지 못할 때는 존재 가치가 소멸되는 것이다. 그러니 공금을 갖고 있을 명분도 사라진 것이다.
재단측은 "후세를 위해 폭동기념관을 건립하는 문제를 한 때 생각해 보긴 했지만 잔여분이 턱없이 적어 난감했다"고 했으나 이같은 발상은 불협화음을 재발케 할 뿐이다. 요즘 부동산 시세를 감안하면 건물을 구입하는데 100만달러 단위의 재원을 마련해야 하는데 22만여달러로 이같은 계획을 실행에 옮기는 것은 현실성이 없다.
추가 모금운동을 한바탕 벌여야 할 판이다. 지난 94년 손해를 보고 매각한 건물도 처음엔 후세에 폭동을 기억하게 할 목적으로 구입했다가 취지는 전혀 살리지 못한 채 흐지부지 원금만 축낸 꼴이었다. 기념관을 설립하겠다는 것은 그래서 위험한 아이디어다.
어떤 단체든 감시 기능이 없으면 부패하기 쉽다. 재단측은 "4~5명의 이사가 있다"고 하지만 회동이 뜸하니 성금과 재단 활동에 대한 감사가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지에 대해 믿음이 가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재단측이 아무리 "성금을 잘 보관하고 있다"고 호언장담해도 그다지 설득력이 없는 것이다.
재단측은 "건물 매각 후 남은 돈에서 건물관리 등과 관련해 진 3만~4만달러의 빚을 갚고 20만여달러를 은행에 입금했고 이자가 붙어 22만여달러가 남아 있다"고 한다. 차제에 ‘빚’의 내역과 은행구좌에 대한 자료를 공개하는 게 부담을 덜고 재단의 투명성 제고하는 길이다.
재단관계자의 "욕심 없다"는 말을 믿고 싶다. 문제는 행동이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이젠 성금 잔여분을 잘 집행하는 일만 남았다. 사용할 방도가 떠오르지 않는 상황에서 공금을 갖고 있다가 구설수에 오른다면 이는 전적으로 재단의 책임이다.
재단은 조만간 이사회를 열고 이를 심도 있게 논의해야 할 것이다. 4.29장학재단과 논의하는 것도 한 방법일 듯 싶다. 재단이사가 자신의 가족과 친지에게 장학금을 지급해 말썽을 빚은 장학재단이지만 원금은 총영사의 서명 없이는 인출이 되지 않으므로 일부 한인이 흑심을 품더라도 ‘원천적 비리’는 봉쇄될 수 있으니 말이다. 비교적 안전한 피난처라 할 수 있다.
구호재단측이 건물 매각 후 성금 잔여분을 지난 99년 장학재단에 넘겼으나 장학재단측이 이를 되돌려준 적이 있다. 이 과정에서 양측의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돼 접점 모색에 실패했다고 하지만, 이유에 어디에 있건 지금은 머리를 맞대야 한다. 장학재단측은 폭동성금과 장학기금을 차별화해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결국 폭동을 계기로 조성된 기금이고 폭동과 관련된 일에 쓰인다는 목적을 갖고 있다. 물론 폭동성금 용처를 둘러싸고 재단 관계자들간에 유형, 무형의 ‘보상’이 거론되거나 오고가서는 안 된다.
만에 하나 구호기금재단측이 "조금 지나면 잠잠해 지겠지"하는 마음으로 성금문제에 임한다면 오산이다. 재단측은 이사회를 열어 이 사안을 논의하고, 아울러 은행구좌 명세를 한인사회에 공개해야 한다. 그리고 커뮤니티의 중지를 모아야 한다. 유치원 어린이들에서부터 웰페어를 받는 할아버지 할머니들까지 동참해 공들여 모은 성금임을 절대 잊지 않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