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 행정부의 대 북한정책은 비판자들에겐 평화 노력을 방해하는 우파 이념의 표상으로 여겨졌다. 부시 대통령이 북한의 스탈린주의적 정권을 ‘악의 축’으로 불렀을 때 비판자들은 부시가 외교적 진전을 꾀할 기회를 봉쇄하는 한편 북한과 대화를 지속하려는 한국을 도외시했다고 비난했다.
그러므로 부시 행정부의 강경 노선이 작은 결실을 거두고 있는 것 같다는 얘기는 흥미를 끌기에 충분하다. 더욱이 이같은 발언이 부시 행정부의 강경파의 입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한국의 외교부장관 입에서 나온 것이라 더욱 그렇다. 최성홍 외교부장관은 지난주 워싱턴 DC를 방문해 "간혹 큰 몽둥이가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끌어내는 데 효과를 낸다"고 했다. 최 장관은 부시 행정부의 최근 북한이 대화에 관심을 보인 것은 미국의 강경 노선이 주요한 지렛대 역할을 했다고 했다.
동시에 최 장관은 이같은 상황을 십분 활용하기 위해 부시 행정부가 강경 노선에 유연성을 가미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 시점에서 ‘채찍 정책’의 득실을 따져보는 것은 재미있는 일이다.
최 장관에 따르면 국민들이 기아에 허덕이는 북한의 독재자 김정일은 클린턴 행정부에 대해 향수를 느끼고 있는 것 같다.
김정일은 클린턴 행정부와 협상을 하려했다. 클린턴은 집권 말기 매들린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을 평양에 파견했고 자신도 이어 평양을 방문하려 했다. 그러나 시간이 없어 이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김정일은 "내가 왜 미국과 같은 대국들을 찾아가야 하나? 나는 평양에 있을 것이고 그들이 나를 찾아오는 것이다"고 했다 한다.
하지만 부시가 집권하면서 평양방문에 대해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고 핵무기와 미사일개발을 억제하기 위해 북한에 유인책을 쓸 생각을 전혀 비치지 않으면서 김정일은 뾰로통해졌다.
그러나 2주전 김정일은 임기 10개월을 남긴 상황에서 ‘햇볕정책’이 열매를 맺도록 열망하는 김대중 대통령이 보낸 특사를 만날 것을 약조했다. 특사가 김대중 대통령의 8페이지 짜리 친서를 가져갔음에도 불구하고 김정일은 첫 이틀간 특사를 만나지 않다가 마지막 이틀간 특사와 5시간동안 의미 있는 대화를 나눴다.
김 대통령의 지시대로 특사는 "김 대통령은 김정일 위원장에게 말하기 껄끄럽지만 부시 행정부의 대 북한 정책기조에 대한 엄연한 현실을 직시할 것을 촉구했다. 외교노력이 수포로 돌아가면 군사행동에 돌입할 수밖에 없다는 기조 말이다. 김정일 위원장은 이를 이해한 것 같았다"고 최 장관은 전했다. 최 장관은 "북한은 더 이상 극단적인 줄타기 정책이 먹혀들지 않는 것을 깨달았으며,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에서 보여준 군사행동과 현대무기의 정교함에 겁을 먹은 것 같다"고 했다.
문제는 북한이 드러내는 새로운 분위기를 어떻게 이용하느냐이다. 미국의 목적은 단순히 전쟁을 피하는 것이 아니다. 채찍정책의 효용성은 전쟁 없이 합당한 성과를 도출해 내느냐에 달려 있다. 대북한 정책을 수립할 때 어떤 미 행정부도 난처함에 처하게 된다. 우선 바른 목적을 정해야 한다. 기아에 허덕이는 2,200만 북한 주민을 생각하면 현 정권을 바꾸는 것이 바람직할지 모른다. 그러나 미 행정부와 한국 정부는 이같은 전략에 내재된 위험성을 감안해 점진 개혁을 원해왔다.
둘째 문제점은 점진개혁을 어떻게 역효과 없이 수행하는가 하는 부분이다. 즉 북한의 비정상적인 행동이 국제사회의 관심과 유화책으로 이어진다면 곤란하다는 것이다. 클린턴 행정부는 대화를 촉구하면서도 전적으로 유화책 일변도는 아니었다. 으름장을 놓는 부시 행정부도 북한에 식량을 제공하고 대화를 제의해 왔다. 이런 점에서 두 행정부는 비슷하게 점진개혁과 그 위험을 모두 고려한 듯하다. 하지만 부시 행정부는 김정일이 지금껏 위협적인 태도로 ‘재미’를 보았다고 믿고 있다.
최 장관은 미 당국자들에게 "지금의 모멘텀을 살리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최 장관이 전하듯, 이에 대한 미 당국자들의 반응은 "이 문제를 신중히 생각하겠다"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