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색을 하고 마주 앉아서 하는 대화보다 우연히 스치면서 주워들은 말에 더 진실이 담겨 있을 때가 적지 않다. 얼마 전 집사람의 여고 동창생이 오랜만에 우리 집엘 들렸다. 나는 그때 뜰에서 정원 일을 하다가 잠시 쉬고 있었는데 두 사람의 얘기가 리빙룸의 열린 창문으로 새어 나온다.“어머! 어떻게 애를 의대에 보냈니? 자세히 좀 가르쳐 줘!”그 동창생은 자기 아들도 꼭 의대에 집어넣고야 말겠다는 굳은 의지를 표명한다.
한인 부모들 중 상당수가 자식들의 적성과 관계없이 무조건 특정 전공을 미리 정해놓고 밀어붙이는 경향이 있다. 장학생 선발대회의 심사위원을 해 보면 한인사회와 미국인사회의 큰 차이점이 드러난다. 한인 장학생 후보생들은 거의 천편일률적으로 특정과에 지망한 후 인류복지에 공헌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힌다. 그것이 자의인지 부모의 영향 때문인지 알 수 없으나 어쨌건 부모-자녀간의 의견이 딱 맞다. 그와는 대조적으로 미국인 우수 학생들의 전공 희망은 지질학에서 천문학까지 실로 광범위하다. 여기서 가치판단 논쟁을 하고 싶지는 않지만 미국 학생들의 다양성 쪽에 손을 들어주고 싶다.
동창생의 질문에 우리 집사람은“남편이 월급쟁이라 돈을 못 버니 애들 공부라도 시켜야지 않겠니?”라고 대꾸했다. 농담인지 진담인지 알 수가 없으나 아내의 그 말이 계속 귓가에 맴돈다. 맨 날 들어온 말이었다면 아무렇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 말을 우연히 들으니 돌멩이로 가슴을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뼈가든 말이다.
진실 만한 농담이 없다. 아내 얘기의 앞부분은 부인 못할 사실이다. 무능한 사람의 대명사쯤으로 통하는 평생 월급쟁이도 마감할 날이 멀지 않았다. 정작 내 앞에서는 그런 불평을 한번도 안한 아내다. 가까운 친구의 엉뚱한 질문에 대한 농반진반 대답이었을까. 아니면 축재에 서투른 남편에 대한 불만을 세상사람 아무도 모르게 가슴속에 담고 지내다가 불쑥 내뱉은 것일까.
아이가 의대 쪽으로 전공을 정하게 된 배경에는 부모의 영향이 거의 없었다. 대학 졸업반 때까지도 투자금융과 음악을 놓고 진로를 고심했으나 어느 쪽이 좋으니 그 길로 가라는 말을 못해 주었다.
말을 극히 아끼는 성격인 우리 아이는 자기가 시시콜콜하다고 생각되는 말은 지금도 삼간다. 대학 다닐 때도 관심 있는 분야를 광범위하게 말해서 알고 있었을 뿐 구체적으로 무슨 과목을 언제 택했는지 등 세부적인 내용은 전혀 몰랐다. 의예과(pre-med)라는 말을 싫어해 얘기도 못 꺼내게 했고 자신은 화학도라고만 했었다. 미국 대학에는 의예과 전공이란 없다고 누누이 강조했다. 어느 쪽이든 본인이 택하면 적극 후원하겠노라는 부모의 원칙적 입장을 확인해 준 정도 이외에 진로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는 피했다.
확신에 바탕을 둔 의견이 없는 주제에 무식을 용기라고 고집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솔직히 지금도 자식의 진로에 대해 충고해줄 만큼 각 분야에 대해서 알고 있지 못하다. 제한된 지식만으로 충고하는 일은 위험천만하다. 나는 좁게 외길을 걸어왔다. 내가 직접 체험해보지 않은 다른 분야를 알 도리가 없으니 아는 체하지 않는 것이 상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