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의 앞날을 바꿔놓을 만큼 큰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그 나라 국민이면 누구나 나름대로 처방전 한 두 개씩 내놓는다. 평양에서 남북한 정상회담이 열렸을 때도 저마다 통일에 관한 견해가 분분했고 소위 IMF 사건으로 경제위기가 닥쳤을 때는 개똥쇠도 경제 논객으로 활약했었다. 적지 않은 경우 여론의 대부분은 논리가 결여된 감상적 결론으로 흐르는 경향이 있다.
대 사건 때마다 상식 밖의 뚱딴지같은 논평으로 자신의 속내를 들어내 보임으로서 만인의 지탄이 되는 사람들이 꼭 나타난다. 세계무역센터 테러범 19명의 배경에 광신적인 이슬람교가 자리잡고 있다는 것은 다 알려진 사실이다. 어떤 종교라도 광신적이 되면 천인공노할 행위를 종교의 이름으로 자행한다는 것을 우리는 역사에서 수 없이 배워왔다. 적게는 개인의 운명과 가정파탄에서부터 대규모 학살까지 종교를 앞세운 인간들의 만행은 지금도 계속된다.
9·11 사건 직후 미국의 두 기독교 지도자들이 행한 망언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팔웰(Jerry Falwell) 목사와 로벗슨(Pat Robertson)목사는 평소에도 전혀 납득할 수 없는 헛소리를 해온 사람들이다. 이 두 목사는 9·11 테러가“미국내의 비기독교 신자들, 낙태주의자들, 여성운동가들, 동성애자들, 그리고 인권운동권 사람들 때문에 신이 내린 벌”이라는 정신나간 발언을 했다. 두 목사야말로 테러범들의 정신적 동지로 이들과 내통하고 있는 사람이 아닐까?
뉴욕과 워싱턴DC에서 동시에 일어난 9·11 테러는 미 국민의 장래 의식과 행동을 크게 바꾸어놓을 실로 엄청난 사건이었다. 정치 심장부와 경제 센터를 노린 실질적인 미사일 공격은 몇 세대 이상 미국 본토에서 전쟁을 치르지 않은 미국인들에게는 분명히 상상을 초월한 대 사건으로 받아들여졌다.
세계 각처에서 끊임없이 벌어지는 분쟁은 많은 미국인들에게 미국과는 무관하거나 미국이 관련됐다해도 외지에서나 벌어지는 전쟁게임 정도 이상의 의미를 주지 못했다. 근세에 미국이 치른 전쟁은 한국·월남·보스니아·소말리아·쿠웨이트 등 지도로 확인하지 않고는 잘 알 수도 없는 지역에서 벌어졌었고 그나마 일종의 대리전 성격이 고작이었다.
그런 미국인들에게 이번 테러 사건은 미국 본토가 얼굴도 모르는 적에게 아무런 경고 없이 언제라도 침공 당할 수 있다는 현실을 일깨워 줬다. 어마어마한 경각심을 미국인 모두에게 심어주었다. 미국이 처음으로 직접 적침을 당한 격이어서 미 국민들이 자국을 보호하기 위해 전쟁에 임하겠다는 자세를 보이는 것도 과거 어느 전쟁과 근본적으로 다른 점이다.
미국은 지금 무엇을, 어떻게 할지 결정해야 하는 중대한 시점에 있다. 미국인들은 지금 제각기 군사 전략가가 돼 핵무기 사용부터 항공모함 포격까지 왈가왈부 하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인도주의를 내세워 보복하지 말 것을 호소한다. 이번 사태의 큰 과제는 미국의 근본 이념인 최대 다수의 최대자유를 어떻게 보호하느냐 하는 것이다. 분명한 사실 하나는 미국이 그 이념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대가도 지불할 의지가 있다는 점이다.
지금은 미국인 전체가 불안과 공포에 싸여 있지만 머지 않아 테러 주체들이 공포에 떨게 될 것이다. 테러 수괴의 사살 사명을 띤 특공대 조직까지 동원돼 차제에 테러의 근본적인 조직을 말살함으로서 테러 위협을 최소화하도록 할 것이다.
당장은 테러리스트들이 소기의 목적을 성공적으로 달성했다고 자축하고 있겠지만 이번 사건은 그들의 종말을 재촉하는 기폭제였다는 사실을 시간이 가면 알 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