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어느 날 갑자기

2001-02-22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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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경자 <시인>

“안녕하세요?”하고 Y선배에게 인사를 하고 보니 어째 얼굴이 시무룩하고 상해 있다. 함께 있던 P선배도 나를 보며 동감이라는 표시다. 해가 넘도록 바쁘고 복잡한 테두리를 못 벗어나서 이제서야 새해 인사 겸 만난 것이다.

이야기인즉 이렇다. 지난 12월 한참 바쁜 때에 갑자기 종업원의 상당수가 일을 그만 두었다고 한다. 알고 보니 같은 길에 있는 새로 오픈한 곳으로 대거 이동을 한 것이었다. 새로 오픈한 곳의 환경과 월급이 나았을 것이다. 몇 명이 부추겨서 한번쯤 나은 곳으로 옮겨볼 만하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그러나 종업원들과 잘 지내기로 소문나 있는 이 업주는 몹시 당황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은 다른 경영주보다 종업원에게 잘해 주고 급료도 비교적 정당하게 지급해 나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늘 식구같이 지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하필이면 1년 중 비즈니스의 대목인 12월에 기막힌 꼴을 당한 것이다.

경험이 있던 없던 간에 가족은 물론 친구들까지 모두 불러 위기를 모면했다. 우린 참 이상했다. 그리고 슬픈 생각이 들었다. 걱정이 되었다.


자신이 불합리한 일을 당했을 때는 분노하고 다른 이를 비난하면서 자신이 해야 할 당연한 도리를 무시한다. 옆집에 새로 난 가게로 옮기는 것이 자신의 권리라고 생각했다면 그동안 일자리와 우정을 함께 했던 고용주에게 간다는 인사는 물론, 대신 일할 다른 사람을 구할 시간을 주어야 하는 것이 의무이기 전에 인지상정이 아닌가 싶다.

미국회사에서는 고용계약서의 이런 저런 규정에 서명을 하고 나면 꼼짝없이 그 법을 지킬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한국 사람들끼리니까 우리끼리 뭐... 이런 식으로 서로 봐주고 믿어주는 훈훈한 너그러운 인정이 오히려 이런 아픔을 일으킨다면 우리는 슬프다. 이 민족의 이민생활이 걱정된다.

함께 일하던 동료가 갑자기 안나오게 되면 맡은 부서의 일이 정해 있고, 항상 일이 넘치는데 남아 있는 사람들은 곤혹스럽다. 항상 그들은 ‘갑자기’ 또는 ‘어쩔 수 없어서’라고 변명한다. 가정 사정이라고 하니 섭섭한 마음으로만 송별식까지 마치고 안녕을 빌고 헤어진다. 그 다음주쯤 들려오는 소식을 다른 거래처로 자리를 옮겼을 뿐이라 한다.

그뿐 아니다. 일하던 비즈니스를 똑같이 차려서 독립한 것까지는 그래도 크게 뭐라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때가 되면 자립 능력과 여건이 주어지는 것이 개인의 발전이고 사회 구성 현상이니까. 그러나 자기 고용주였던 그 업체와 정당한 경쟁이 아닌 고객명단 유출 또는 사업기밀 누설 등으로 정말 화나게 하는 것도 종종 본다.

우리는 누구를 믿고 살 수 있는가. 적어도 남과 남 사이의 인위적인 만남으로 이루어져 가는 이 사회생활에서 ‘어느 날 갑자기’ 같은 사건의 연속 같은 인생을 이어가야 하겠는가 말이다.

미국에서 사는 우리에게 대한민국 헌법도 아닌 생소하고 복잡한 헌법과 지역사회의 자질구레한 규칙이 너무 많다. 이 땅의 질서와 번영을 위해 우리가 모두 정해진 법과 도덕을 지켜나가야 하는 것이 어느 땅의 시민이든 당연한 도리인 것이다. 그것은 나의 권리와 자유와 행복을 보장받기 위한 나의 의무이고 책임이라고 생각한다. 내 후손들이 살아갈 땅의 편안하고 자유로운 분위기를 위해 내가 먼저 실천하는 것이다.

직장을 옮길 때도, 각자 다른 길을 갈 때도 서로를 위해 축복의 인사를 보낼 수 있었으면... 언젠가 ‘어느 날 갑자기’ 만나도 반갑고 고마운 우리가 되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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