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한국고아 해외입양 왜 여전한가

2001-02-22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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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향민<영어음성학자>

한국전쟁이 끝났을 때 수많은 전쟁고아들은 한국사회의 큰 문제였다. 미국인들의 도움을 받아 해외 입양이라는 돌파구로 문제의 일부분이나마 해결할 수 있었던 것은 국가적으로 사회적으로 다행스런 일이었다. 적지 않은 고아들이 미국을 포함한 유럽 여러 나라의 가정에 입양되었다. 물론 모두가 성공적이지는 못했지만 분명한 것은 대부분의 전쟁고아들이 입양으로 인해 보다 나은 삶을 살게 되었다는 것이다.

전쟁고아가 해외로 입양되던 시절은 이미 50년 전이다. 그런데 한 세대 이상의 시간이 흘렀음에도 한국은 고아를 해외에 입양시키고 있다. 물론 지금의 해외 입양아들은 더 이상 전쟁고아가 아니다. 그러면 그들은 누구인가? 왜 여전히 수많은 고아가 양산(?)되고 있는가?

미국에 살면서 입양아를 키우는 미국인 가정을 볼 때가 있다. 그들의 입양아를 키우는 모습은 아름답다. 입양아를 잘 키우기 위하여 자신들의 아이를 낳지 않는 부부도 있다. 장애자만을 입양하여 키우는 가정도 있다. 이것은 인류애와 희생정신을 기본으로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러한 양부모들은 입양아들이 성장해서 자신의 생부모를 찾으려 할 때 도와준다. 아름답다는 말로는 부족함을 느낀다.


한국인들은 원칙적으로 남의 자식을 키우지 않는다. 이러한 구조를 사회학적 용어로 1차 혈연주의라고 한다. 1차 혈연주의란 자신의 직계가족 중심을 뜻한다 쉽게 말해 내가 낳은 자식이 아니면 안 된다. 이러한 1차 혈연주의는 극단의 폐쇄사회와 이기적인 사회를 만든다. 한국인 사회에서 양자가 활성화되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1차 혈연주의 때문이다. 대를 잇기 위해서 양자를 택하기보다 다른 여자로부터라도 아들을 낳는 집요함을 보이기도 한다.

한편 일본은 같은 문화권이면서도 1차 혈연주의를 고집하지 않는다. 일본사회의 양자는 특별한 일이 아니다. 사촌간의 양자는 보편화된 상식이다. 일본은 2차 혈연주의라고 할 수 있다. 한국사회에서도 양자라는 관습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갓난아이일 때 입양하여 마치 친자식인양 위장하여 키운다. 어떤 사람들은 비밀을 유지하기 위하여 다른 지방으로 이사해서 살기도 한다. 그러나 많은 입양아들은 후일 어떤 경로로 자신이 입양아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러한 경우 대부분의 입양아들은 충격에 방황하게 된다.

그러나 미국이나 일본에서는 입양아라는 사실을 감추지 않는다. 혹 갓난아이일 경우에도 한국에서와 같이 굳이 감추려고 하지 않는다. 이렇게 처음부터 사실을 아는 입양아들은 고마움을 갖고 성장한다.

한국인의 1차 혈연주의 하에서는 원칙적으로 남의 자식은 내 자식이 될 수 없으며 따라서 공개적으로 남의 아이를 입양하는 일은 가능하지 않다. 이러한 사회적 구조가 고아들을 자체 흡수하는 능력을 갖추지 못하게 하는 걸림돌이다.

한국의 한 TV 방송에서 심각한 고아문제를 특집으로 다룬 프로를 방영한 적이 있었다. 놀라운 것은 많은 고아들이 부모에 의해 버려졌다는 사실이다.
한국인들은 아이들을 잘 버린다. 이것은 충격적인 일이다. 그리고 이것은 1차 혈연주의의 고집과 전혀 맥을 같이 하지 않는다. 1차 혈연주의를 고집하면서도 자식을 잘 버린다면 그것은 극단적인 편리주의에 지나지 않는다. 그 이상의 인간성 상실이다.

한국도 이혼이 급증하고 있다. 세쌍 중 한쌍이 이혼한다고 한다. 다시 결혼을 하기 위해서는 아이는 부담이다. 물론 대부분은 그렇지 않겠지만 이혼을 할 때 서로 맡지 않으려고 싸운다. 이후 어쩔 수 없이 맡게 되면 버린다. 지금의 고아들은 전쟁고아와 같이 불가피한 고아가 아니라 이러한 이유 등으로 버려진 인위적인 고아들이다. 아이는 필요할 때 갖고 필요하지 않을 때 버리는 물건이 아니다.

한국전쟁이 끝나고 이북에서 피난하여 먹을 것이 없고 입을 것이 없는 최악의 상황에서도 가공할 생활력으로 자식을 훌륭하게 키워낸 그 어머니들을 생각해 본다. 모성만 갖고도 해낼 수 없는 그 이상의 인간으로서의 책임감이다.

몇년 전 LA타임스에도 한국인의 자식 버리는 문제가 심각하다는 특별기사가 있었다. 부끄러운 일이다. 그런데 아무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한국사회의 지도급 인사라는 사람들은 제발 자신과 혈족의 영달을 위해서만 살지 말고 솔선하여 고아를 입양하는 모범을 보여야 한다. 그리하여 고아의 입양이 사회 전반에 상식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고아문제도 자체로 해결하지 못하는 나라가 어찌 선진국임을 자처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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