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춘향

2001-02-21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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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리스 포먼<샌프란시스코주립대 교수>

샌프란시스코 크라니클지의 영화 평론가 빌 그램이 영화 ‘춘향’을 극찬하며 이렇게 논평하였다. "한국의 민속 이야기가 임권택 영화감독의 손을 통하여 전통음악과 함께 신비롭게 펼쳐진다. 임감독은 사랑에 빠진 젊은 남녀의 이야기를 창으로 관중들에게 들려준다. 장난기 섞인 명창은 때로는 춤을 추고, 때로는 열정적으로 뱃속에서부터 끌어 낸 소리로 이야기를 강조하며 관중들과 직접 얼굴을 맞대고 대화하는 식으로 엮어 가는 영화장면은 새롭고 감동적이다"

칭찬을 아끼지 않고 쓴 평론도 도움이 되었고, 영어로 번역된 한국영화를 미국 극장에서 볼 수 있는 기회를 놓칠 수가 없어 아내와 함께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클레이 극장으로 향하였다. 영화를 보러 가는 도중 아내로부터 춘향이 이야기를 들어 대강 줄거리는 알고 갔지만 최근에 인상 깊게 본 중국 무술영화를 생각하면서 영화관에 갔다.

‘춘향’은 중국무술영화에서 보았던 것처럼 주연 배우들이 지붕 위를 번개처럼 뛰어 다니는 액션 영화는 아니었지만 두시간 정도 상영되는 ‘춘향’을 감명 깊게 보았다. 스테이지 공연으로 판소리 가수가 노래를 부르면서 현대와 고대를 넘나드는 식으로 영상처리를 하였다. 처음에는 특이한 영화 테크닉이 불안정하게 느껴졌지만 영화 줄거리가 진행되어가면서 영상효과를 더해주었다. 눈앞에 한국인들의 옛날 생활 모습이 펼쳐졌다. 하얀 한복을 입고 공부하는 남자들의 모습, 땅에 엎드려 시험을 치는 학자들, 말꼬리 털로 만든 모자를 쓴 특이한 패션, 초가지붕, 논에서 쟁기질하는 농부들. 이국적인 정경이 스크린을 채웠다.


200년 전의 한국사람들이 살던 모습을 보면서 한국사람들의 의식과 가치관을 볼 수 있었다. 한국인의 정서를 이해하기 위하여서 한국사람들의 과거를 이해하여야만 한다. ‘춘향’ 영화에서 현저하게 드러나는 한국인의 의식 몇 가지가 나의 관심을 끌었다. (춘향을 나는 아직도 소화시키고 있는 중이다)

첫째, 한국 사람들이 자주 쓰는 말, ‘한’을 잘 묘사하고 있다. ‘한’이라는 말을 미국사람에게 설명하여 본적이 있는가? 영어로 ‘한’의 정의를 설명할 만한 영어단어가 없다는 것을 알 것이다. 한을 표현하기 위하여 수십 개의 영어 단어를 사용하여도 정확히 표현할 수가 없다. ‘슬픔’‘후회’ ‘감정을 억누르는 것’ ‘복수’ ‘운명’ 등 많은 영어 단어를 쓰지만 단면을 표현할 뿐이지 ‘한’을 한마디로 표현할 수 있는 마땅한 영어 단어가 없다. 춘향이가 처해있는 상황과 한국문화를 그린 영화를 보면 아마 미국사람들이 한국말 ‘한’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순결한 처녀였던 춘향은 양반인 이도령에게 농락을 당하고, 결혼을 하고, 그리고 배반을 당하고, 자신의 목숨을 내어놓고 배반한 남자를 끝까지 사랑하고, 마지막에 구원을 받는다. 누가 ‘한’이 무엇인가 하고 물으면, 영화 ‘춘향’을 보라고 권하겠다. 춘향이 한이고 한이 춘향이기 때문에.

두번째, 옛날 한국의 계급의식을 잘 보여 준다. 이도령이 암행어사로 나와서 부패한 군수에게 말하는 장면이 있다. 이도령은 군수에게 "왜 춘향에게 벌을 주었느냐"하고 묻는다. 악독한 군수가 "나는 양반이고, 춘향은 천한 기생이다. 그녀가 나의 명령을 거역하였기에 처벌한 것뿐이다" 라고 대답한다. 이도령은 자기의 사랑하는 아내가 매를 맞고 죽을 지경에 이르도록 심한 벌을 준 당사자에게 복수는커녕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이도령은 못 본 척 허공을 쳐다보며 마치 악한 군수의 말에 동의라도 하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 자리를 떠난다.

악한 군수는 국민들을 혹사시키고 세금을 포탈한 죄로 심판 받지만, 춘향을 자기 첩으로 만들기 위해서 못되게 굴었던 죄는 심판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춘향에게 벌을 내린 것은 그의 위치로서 당연하다는 식의 태도를 보인다. 이점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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