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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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받을 수 없는 클린턴 사면

2001-02-21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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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의 시각

▶ 해밀턴 조던 (월스트릿저널 기고)

일반 시민들은 백악관에서 일해본 적이 있는 사람들에게 클린턴의 사면이 얼마나 화나는 일인지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사면권은 과거의 불의를 시정하기 위한 것으로 절대적이고 신성한 것이다. 일단 내려지면 돌이킬 수 없기 때문에 까다로운 절차를 밟게 돼 있다.

카터 행정부부터 클린턴 이전까지 백악관이 시행해온 사면 결정 과정은 이렇다. 우선 특정 케이스에 관한 법무부의 공식 서면 보고가 있어야 하고 재판 기록과 사건 담당 검찰팀의 보고서, 사면을 해야 하는 이유와 해서는 안되는 이유 리스트와 형 감경 사유서, 법무부의 공식건의서가 제출돼야 한다. 백악관 법률 고문과 법무장관이 직접 관여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마크 리치 케이스에는 이같은 통상 절차가 모두 무시됐다. 리치의 변호사이자 클린턴의 전직 법률 고문이었던 잭 퀸이 마지막으로 클린턴에 사면을 호소했다는 기록밖에 없다.


클린턴은 사면과 관련, 정치 보좌관이나 기금 모금자, 리치의 전 부인인 데니즈, 외국 지도자들과 의견을 나눴음에도 정작 사건 당사자인 법무부 관리들의 자문은 거부했다. 클린턴은 지난 일요일 뉴욕타임스 기고를 통해 이스라엘을 비롯한 외국 지도자들의 압력이 주효했다고 주장했지만 외교 정책 보좌관들의 의견도 듣지 않았다.

대통령이 카터였다면 비서실장이 백악관으로 걸어 들어가 탈세와 불법취득 혐의로 시민권을 버리고 외국으로 도망친 사람을 사면했을 때 발생할 정치적 득실을 의논하는 것을 상상할 수 없다. 다른 비서실장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카터에게 내가 사면을 건의했다면 카터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졌을 것이다. “왜 비서실장인 당신이 이 문제를 거론하는가”“법무장관은 어떻게 생각하는가”“백악관 법률고문은 뭐라 하는가”“사면을 해야할 이유는 무엇인가”“검찰도 사면에 찬성인가”. 내가 “잘 모르겠다”고 대답하면 카터는 특유의 싸늘한 눈길로 쳐다 본 후 “사면은 중요한 법률 문제며 당신이 관여할 사항이 아니다. 다시는 이 문제를 가지고 오지 말라”고 호령했을 것이다. 내가 “그러나 이 사람은 선거자금을 많이 내놨고 카터 대통령 도서관에 기부금을 내놓기로 했는데요”라고 용감하게 말을 꺼냈더라면 나를 그 자리에서 파면했을 것이다.

클린턴 백악관의 수준이 사면을 보좌관과 의논해 아무렇게나 정해도 좋은 대통령의 특권으로 여겨질 정도로 타락했다는 것은 믿기 어려운 일이다. 클린턴 같이 재능 있는 정치인의 판단이 이렇게 까지 흐려질 수 있다니 놀랍다. 그 한가지 원인은 클린턴의 자기중심적 성격 탓일 것이다. 모든 것을 여론조사를 해본 후 결정하는 클린턴은 탄핵재판 이후에도 자신의 인기가 높자 이를 미국민이 자신을 용서한 것으로 착각한 것 같다. 백악관에서 인턴과 섹스를 하고 위증을 해도 괜찮다면 무슨 짓이든 못하겠는가.

대통령으로서의 연설이나 정책 발표로 뉴스를 휘어잡을 수 없게 된 지금 리치의 사면부터 선물 들고 나가기까지 퇴임후 보여준 그의 작태는 클린턴의 실상이 무엇인지를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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