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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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도 약된다

2001-02-17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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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규태 <스포츠부>

올해 독감에 울고 웃은 PGA투어의 최경주와 LPGA투어의 박세리. 운동선수가 대회를 앞두고 독감에 걸리면 그 영향은 얼마나 클까.

최경주는 최근 샌디에고 토리파인스에서 열린 뷰익인비테이셔널에서 잘나가다가 독감이 악화되는 바람에 감각이 무뎌져 공동 4위에서 48위까지 떨어지는 초고속 미끄럼을 탔다. 반면 박세리는 올 LPGA시즌의 개막전인 유어라이프 바이타민스 클래식에서 편도선이 부어 몸을 질질 끌고 다니면서도 챔피언에 올랐다. 어떤 차이가 이런 결과를 초래했을까.

이를 단순한 정신력의 차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항상 겸손한 자세로 믿음직한 인상을 주는 최경주가 시시콜콜한 변명을 늘어놓을 사람도 아니며, 최경주의 정신력을 의심하는 사람은 아직 만나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다만 "감기가 악화돼 약을 먹었더니 하루종일 몸이 말을 안들었다. 특히 퍼터가 무뎌졌다. 집중력이 떨어지고 셋업 포지션에서 귀가 웅웅거리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며 아쉬움을 달랜 최경주가 독감의 적지 않은 영향을 받은 반면, 박세리에게는 독감이 오히려 마음의 부담을 덜어준 ‘약’이 됐던 것이다.

지난해 무관왕의 충격을 겪었던 박세리가 지난 오프시즌 아무리 단단히 준비를 했어도 마음이 앞서다 보면 실력발휘를 못하기가 일쑤였다. 그러나 "운이 없으려니 하필이면 이때 독감에 걸리는 것은 또 무엇이냐"며 한숨을 폭폭 쉬던 박세리는 그 덕분에 압박감을 떨치고 마음을 비울 수가 있었다. 그리고는 아무런 기대를 하지 않고 편한 마음으로 치다보니 경기가 점점 잘 풀리기 시작했다.

박세리는 1라운드가 끝난 뒤 "목소리도 안나와요. 힘들어 죽겠어요"라고 말하며 어깨를 축 늘어뜨렸고, 2라운드를 마친 뒤에도 "기침을 하느라 잠을 한숨도 못잤다"며 고달픈 표정만 계속했다. 그 상태에서 상위권에 들자 자신감이 붙지 않을 수가 없었고, 박세리는 다음날 무려 14개월간의 우승가뭄을 끝냈다.

육체적인 최상의 컨디션보다 심리적인 부담을 던 효과가 훨씬 크게 작용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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