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이민자의 신분상승 욕구

2001-02-08 (목)
크게 작게

▶ 장동만<언론인>

서울에 나가면 쉽게 연락이 닿을 수 있는 사람들은 아직 ‘현역’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이다. 우리 나이면 그 어느 분야에 있건 꽤 ‘높은 자리’, 그들을 만나 이야기를 주고 받고, 식사라도 한번 같이 할라치면 괜시리 어깨가 으쓱해진다. 마치 나 자신이 그들의 ‘높은 자리’와 동열에 서있기나 한듯…

인간에겐 신분상승 욕구라는 것이 있다 한다. 현재 자기의 위치보다 한 단계 더 ‘높은 계층’에 귀속해 보려는 간절한 욕구다. 그런데 인간의 이 기본 욕구가 보통의 경우 어떻게 표출되는가? 한 마디로 말해 ‘있는 사람’ ‘높은 사람’들앞에서 이유없는 저자세다.

권력 가진 사람 앞에서 자신도 모르게 나타나는 굴종과 아첨, 돈 가진 사람 앞에서 무의식적으로 나타나는 구애와 겸손, 그러면서도 우리는 그런 사람들과 어울리고 싶어하고 또 사람에 따라서는 그런 기회를 간절히 염원하기도 한다.


오늘날은 봉건시대와 같은 계급은 없다. 그러나 돈의 많고 적음, 권력 명예의 있음 없음에 따른 계층은 분명 존재한다. 그리해서 사람 사는 것이 천층만층, 계층에 따라서는 전혀 ‘딴판 세상’살이를 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 땅에서 인간의 또 다른 기본욕구인 권력 명예의 기회가 거의 봉쇄된 상황에서 살고있는 우리 이민자들은 이 신분상승 욕구를 어떤 형태로 표출하고 있는가?

이 땅의 메인 스트림엔 참여치 못하고 그 가장자리를 맴도는 우리들, 많은 사람들이 기껏해야 동포 커뮤니티 또는 고국 사람들과의 어떤 연계에서 그 기회를 찾으려 한다. 동포사회에 그 많은 각종 단체조직 모임들, 이에 앞장서는 사람들이 의도하는 것이 무엇일 것인가?

물론 각자 나름대로 그 동기 목적 명분이야 있겠지만 그들의 심리 밑바탕엔 일종의 명예욕과 이같은 신분상승 욕구가 짙게 깔려있다고 말한다면 지나친 억측일 것인가?

그 다음 많은 사람들은 고국 사람들과의 어떤 연계에서 그 기회를 찾으려 한다. 고국의 어떤 ‘지체높은 분’이 이곳에 오면 그들에 대한 동포들의 극진한 대우, 그 모임에 한번 참석하는 것을 무슨 큰 영광이나 되는 듯 우쭐해 하는 일부 교포들, 이같은 현상을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

필자가 보기엔 이 모두가 명예욕 신분 상승욕구의 발로로 보이는데 이 땅에서 우리가 비록 정신적으로 사방이 꽉 막혀있는 상황이긴 하지만 이보다 한 차원높은 어떤 다른 길은 없는 것일까?

오늘날 사회는 수직적으로는‘있고 없음’에 따른 계층사회이지만 다른 한편 수평적으로는 ‘각자 다른’분야에서 일을 하는 다원화 사회다. 그리고 최소한의 의식주는 정부가 보장한다. 그렇다면 계층을 뛰어 넘으려는 신분상승 욕구에 집착하기 보다, 이곳 미국사람들의 사고방식 즉, 남 사는 것을 쳐다 보지도 않고 부러워하지도 않고 ‘너는 너대로’ ‘나는 나대로’ 산다는 인생관에서 무엇을 배울 점이 없을 것인가?

세상은 나 생긴 만큼 나를 대(접)해주는 법, 나의 위치 나의 분수를 망각하고 권력 돈 가진 사람들을 허겁지겁 쫓아가려 또는 떠받들려 하지 말자. 그것은 곧 앞서 말한 필자의 경우와 같이 나자신을 하나의 허상화시키는 몰골 밖에 안되니…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