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삼강오륜을 넘어서야 하는 이유

2001-02-07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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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석정<일리노이주립대 교수>

영어의 brother라는 말은 남자에게는 형이나 아우를 의미하고 여자에게는 오빠나 남동생을 의미한다. 그런데 우리 한국인들에게 답답한 것은 영어로 그냥 brother라고 하면 그것이 형이나 오빠를 의미하는 건지 남동생을 의미하는 건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sister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더 답답한 것은 sister-in-law같은 표현이다. 이는 남자에게는 형수나 제수도 되고 처형이나 처제도 되지만, 여자에게는 손 위나 손 아래의 시누이 또는 오빠나 남동생의 부인, 즉 올케도 된다. 이쯤되면 미국인들은 촌수도 모르는 사람들이라는 말이 나올만도 한다. 우리말에서는 가족관계의 호칭이 남녀의 구분된 관점에서 자세하게 특정되어 있는데 영어의 호칭은 매우 포괄적이고 우리 보기에 두루뭉수리 라고 할 수 있다. 어찌 보면 단순한 습관의 차이라고 할 수 있지만, 이 역시 미국의 철저한 개인중심주의에 대해서 가족이나 기타 공동체를 중시해 온 우리의 문화적/역사적 배경이 빚어내는 차이라고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미국인들은 모든 사람들을 일단 평등한 입장에서 대하는 반면 우리는 자기와 특별한 공동체를 이루는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다르게 대하고 있다.


미국에 이혼률이 높고 10대임신이나 미혼모, 편모/편부가정이 많고, 동성애/양성애/성전환자들이 많고, 알콜/마약 등 가정파괴가 두드러진 이유도 바로 지나친 개인중심주의 때문인지 모른다. 반면에 우리는 일찍부터 삼강오륜(三綱五倫)이라는 윤리관을 바탕으로 가족중심의 공동체 생활을 중시해 온 결과 이런 죄악들에서 멀어질 수 있었다.

지금은 우리의 일상용어에서 사라진 말이지만 군위신강(君爲臣綱), 부위부강(夫爲婦綱), 부위자강(父爲子綱)이라는 삼강과 군신유의(君臣有義), 부부유별(夫婦有別), 부자유친(父子有親), 장유유서(長幼有序), 붕우유신(朋友有信)이라는 오륜은 바로 우리가 관계를 맺고 사는 사람들 사이에서 지키고 기리고 가꾸어야 할 덕목을 적어 놓은 것이다. 남편이 그 아내와 자식을 보살피는 가족관계에서 부부는 구별되고 부자간에는 사랑이 있어야 하고 친구사이에는 믿음이 있어야 하고 나이 든 어른을 먼저 모셔야 한다는 등등은 모름지기 좋은 생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가만히 살펴 보면 이 삼강오륜은 (지금은 그 의미가 많이 퇴색해 버린 임금과 신하 또는 어른과 아이의 관계를 제외하면) 어떤 개인이 갖는 가족관계 또는 친구관계의 범주에 국한되어 있다. 좋은 일을 베풀고 나누는 관계가 가족이나 일정한 친구에 한정되어 있을 뿐 나와 관계없는 사람들, 즉 제삼자나 불특정 다수인에 대해서는 삼강오륜은 구체적인 언급이 없다.

그래서 주장하건대 우리가 이제 극복해야 할 과제 중의 하나가 바로 이 삼강오륜의 좁은 범주를 뛰어 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의 가치관, 생활관, 윤리관, 도덕관이 너무 좁다는 말이다.

우리에게 인정없이 보이는 미국인들이지만 그들에게도 정이 있다면 그것은 어떤 특정한 사람들에게만 향한 것이 아니라 일반에게 두루 퍼지는 애타주의적, 박애주의적인 정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인들이 우리보다 일반적으로 기부를 잘 하고 자원봉사에 더 적극적이고 입양에 더 개방적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는 누구에게나 선한 사마리아인이어야 한다는 그들의 신앙관과도 일치한다. 그들의 정은 어떤 동아리나 울타리로 한정된 것이 아니라 널리 퍼지는 정이라는 말이다.

삼강오륜을 바탕으로 어떤 모양으로든지 공동체를 이루는 상황에서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려는 우리의 끈끈한 동아리의식은 나하고 관계없는 사람들에게는 잘 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을 품게 하고 그런 생각은 다시 행동으로 이어진다. 그 결과 우리의 좁은 울타리의식은 우리나라를 전세계에서 동창회, 향우회, 종친회 등이 가장 왕성한 나라로 만들었고 급기야는 많은 일이 학연/지연/혈연 등의 연결고리에 따라 결정되는 파행적 연고주의, 집단이기심, 지역감정 등 이른바 망국병을 낳고 말았다.

이렇게 보면 한국사회의 부정과 부패, 부조리와 파행이 어디서 싹트기 시작했고 왜 그렇게 고질병으로 확산되었는가를 짐작할 수 있다. 불특정 다수인에 관한 한 우리에게 윤리라는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의 윤리관을 넓혀야 한다. 불건전한 동아리의식을 털어내야 한다.

미국의 개인주의와 우리의 전통적인 공동체주의를 놓고 어느 한 쪽이 본질적으로 우수하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미국도 고쳐야 할 일이 많이 있지만 우리도 고쳐야 할 게 많이 있다. 형이라는 호칭이 따로 있어서 편리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호칭이 따로 없는 사람은 마구 대해도 된다는 얘기는 아니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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