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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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중 신화의 허상

2001-02-07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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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요칼럼

▶ 이 철(주필)

“대우 자동차 노조는 외국에 도피중인 김우중 전회장을 붙잡기 위해 노조 수석 부위원장 김성갑씨를 체포대장으로 임명하고 이달 중순께 체포대를 해외에 파견할 예정이다”

2월 6일자 어느 신문에 보도된 김우중씨에 관한 기사다.

신화를 창조한 기업인으로 불려 온 김우중씨가 어쩌다가 이렇게 비참한 지경에 이르렀을까.


검찰 발표에 의하면 그가 빼돌린 회사돈은 41조원이다. 이 돈을 만원권으로 쌓아올리면 에베레스트산 23개의 높이에 해당된다. 노조가 분개하고 있는 것도 이 돈이면 부도를 내지 않고 회사를 구할 수 있었는데도 김우중씨가 계획적으로 부도를 내고 그 짐을 정부와 은행에 넘겼다는 생각에서다.

김우중씨는 보통 기업인과는 좀 다르다. 마틴 루터 킹 목사처럼 “I have a dream”을 외쳐온 기업인이다. 그뿐인가. 그 자신 전국 대학을 순회하며 기업인의 자세에 대해 강연해 온 ‘철학있는 기업인’이었다. 그의 어록은 아직도 우리 기억에 생생하다.

“대우는 무에서 유를 창조한 회사입니다. 어떻게 일어났는지 아십니까. 정직입니다.”

“김우중은 죽어도 대우는 살아야 합니다.”

그의 기업철학은 한마디로 요약하면 “하면 된다”였다. 세상에 안되는 게 어디 있느냐. 지성이면 감천이다. 열심과 정직이면 모든 것이 통하게 되어 있다.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너무 많다. 대우는 세계를 향한 회사다. 나의 회사가 아니고 대한민국 국민의 회사다. 이것이 그가 외쳐온 기업철학이었다. 그는 한 시대를 상징하는 기업인이었으며 IMF 때는 사재를 다 털어 회사에 내놓는 시늉까지 했었다. 우리가 김우중씨에 대해 일종의 배반감 비슷한 것을 느끼는 것은 그가 젊은 세대에게 항상 ‘정직’을 강조해왔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제 노조에서 체포대가 구성되고 대우관련회사 사장 8명이 감옥에 가게 된 마당에 우리는 김우중 신화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다시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그는 은행빚으로만 회사를 운영해 온 기업인이었다는 것이 밝혀졌다. 쓰러져 가는 회사를 싼 값으로 후려쳐 인수한 다음 이익을 굉장히 내는 것처럼 서류를 꾸며 다시 은행 융자를 얻고, 그 돈으로 또 다른 회사를 세우고 나중에는 어느 회사에서 얼마나 손해가 나는지 헷갈리도록 복잡하게 재정구조를 짜 맞추어 놓았으며, 이 모든 비밀을 혼자서만 알고 있었다는 것이 현재 드러난 윤곽이다.

이렇게 ‘대우’에 구멍이 뚫려 있었는데도 정부가 몰랐다는 것은 감독을 게을리 했기 때문이다. 결국 대우의 구조를 자세히 살펴보면 권력과 재벌이 짜고 화투친 것이고 여기에 국민이 놀아나 대우가 진 빚을 나누어서 짊어져야 할 형편이다. 대우 케이스는 정경유착의 표본이다.


“미국에서는 돈 번 사람을 존경하는데 왜 한국에서는 돈 있는 사람을 욕하는가”라는 말은 툭하면 한국 재벌들이 하는 소리다. 특히 김우중씨는 “정부와 국민들이 왜 기업인의 노력을 이해해 주지 않는가”라며 인식의 전환촉구를 기회 있을 때마다 부르짖어 온 장본인이다. 아이러니칼하게도 국민이 왜 재벌들을 존경하지 않는지 그 자신이 시범을 보인 격이 되었다.

미국의 대기업주와 한국의 대기업주 차이는 한국의 경우 자체 능력에 의한 성장이 아니라 정부 특혜에 의한 성장이기 때문이다.

김우중씨의 강연은 명강연으로 소문나 있었다. 그러나 그의 강연은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기 때문에 이미지 손상이 남보다 더 크다. 한국에서 부자가 기업윤리와 삶의 자세에 대해 강의한다는 것이 얼마나 아슬아슬한 일인가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예수나 석가모니, 소크라테스, 공자가 왜 돈이 없는 사람들이었는지 이해할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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