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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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토끼 토끼야 어디를 가느냐

2001-02-06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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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리스 포먼 칼럼

▶ 샌프란시스코주립대 교수

한국에서 배운 노래 중에 내 기억 속에 가장 깊게 남아 있는 노래는 어린아이가 가르쳐준 노래이다. 무국이라는 작은 마을에서 살 때 하숙집 주인의 세살난 아들은 노래 부르기를 즐겨하였다. 의주는 저녁식사가 끝나면 식구들 앞에서 노래와 율동으로 재롱을 부렸다. 한국말을 배우기 위해서 부로큰 한국말로 나는 의주에게 노래를 가르쳐 달라고 부탁하였다.

처음에 내가 배운 노래는 한국사람이면 누구나 아는 노래이다.

"산토끼, 토끼야/ 어디를 가느냐/ 깡충 깡충 뛰면서/ 어디를 가느냐" 하고 의주가 두 손을 머리에 대고 산토끼처럼 깡충깡충 뛰면서 노래를 불렀다. 노래를 정식으로 배우기 위해서는 의주가 하는 대로 깡충거리는 동작을 하면서 노래를 불러야 했다.


의주가 가르쳐준 노래가 하나 더 있다.

"사과 같은 내 얼굴/ 예쁘기도 하지요/ 눈도 빤짝/ 코도 반짝/ 입도 빤짝 빤짝" 하는 노래이다. 이 노래도 손으로 동작을 하면서 부른다. 내가 특히 좋아하던 부분은 ‘빤짝’이라는 손동작이다.

세살난 아이로부터 배웠던 동요는 술자리에서 써먹기에 편리하였다. 한번은 동료들과 파티에서 차례로 돌아가면서 노래를 불렀다. 내 차례가 되어 십팔번인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라는 노래를 불렀다. 한시간 정도 되었을까 말까 하였을 때 다시 나더러 노래를 부르라고 권하였다. 나는 똑같은 노래를 다시 부를 수가 없어 굳이 사양을 하였다. 그런데도 모두들 손뼉을 치면서 권하는 바람에 할 수 없이, 친구가 나와 함께 노래를 부르면 하겠다고 하였다. 나에게 억지로 노래를 시킨 한인 친구와 함께 ‘산토끼’ 노래를 부르면서 율동을 하였다. 나 때문에 동료들로부터 놀림을 받은 친구는 그 후부터 다시는 나에게 노래 부르라고 권하지 않았다.

한국말로 배운 노래를 요긴하게 사용할 기회가 또 있었다. 큰아들이 말을 하기 시작하였는데 아내는 자신이 영어 배우기에 바빠 아이에게 한국말을 쓰지 않으려고 하였다. 세살난 아들에게 옛날 세살난 의주로부터 배웠던 노래를 가르쳤다. 나의 아들 진하는 외할머니를 처음 만났을 때 한국말로 ‘산토끼’를 의주처럼 잘 불러 할머니를 놀라게 하였다. 할머니가 대견해 하시며 노래 잘한다고 칭찬을 하였을 때, 진하는 자랑스러운 얼굴로 만족해하였다. 한국말을 모르는 손자와 영어를 모르는 할머니 사이에 ‘산토끼’라는 노래가 다리역할을 하여 준 셈이다.

’산토끼’와 ‘사과 같은 내 얼굴’노래 가사가 아마 진하가 구사할 수 있는 완전한 한글 문장이지 아닐까 싶다. 아내는 그때 내가 아이들에게 한국말로 노래를 가르쳤던 것을 천만다행으로 생각한다면서 뒤늦게 후회하며 고마워한다.

작년에 있었던 일이다. 스물 다섯살난 진하는 스탠포드대학에서 가톨릭 학생회 카운슬러로 일하면서 신입생들을 데리고 버스로 여행을 갔다. 지루한 버스여행 중 게임을 하였다. ‘Truth or Dare’라는 게임은 질문에 답을 틀리게 말하면, 질문한 사람이 시키는 대로 복종해야 하는 게임이다. 한국계 학생인 존이 틀린 답을 말하였다. 진하는 존에게 “오케이, 버스 앞좌석에서 뒷좌석까지, 산토끼 노래를 부르면서 율동을 하라”고 명령을 하였다. 존은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놀란 얼굴로 어떻게 미국 사람이 산토끼 노래를 아느냐는 표정을 짓더라 하였다. 게임에서 진 사람은 버스 통행로에 나와서 머리에 두 손을 올리고 산토끼처럼 깡충깡충 뛰면서 ‘산토끼’ 노래에 맞추어 율동을 하였다 한다.

14명의 미국 학생들은 8시간의 지루한 버스 여행이 산토끼 노래 때문에 시간 가는지 몰랐고, 한국말도 배웠다 한다. 진하가 나에게 버스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하면서 자기에게 "산토끼" 노래를 가르쳐준 것을 감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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