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낙서같은 그림, 낙서같은 인생

2001-02-03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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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여성<화가>

1980년 뉴욕경찰은 자고나면 늘어나는 낙서들 때문에 골치를 앓고 있었다. 대부분 가난한 흑인들이나 히스패닉 10대들이 공공건물이나 지하철에 무차별 낙서를 해대는 바람에 깨끗한 공간이 남아나질 않았다.
마치 도시 게릴라처럼 동시다발적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막강한 뉴욕 경찰력으로도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었다.

그러나 낙서들 중에서도 일관된 독특한 그림이나 글씨체 또는 서명으로 그 괴수의 정체들이 경찰의 리스트에 오르게 되는데 키스 헤링(1958~1990)과 장-미셀 바스키아(1960~1988)이다.

헤링은 지하철에 설치되어 있는 광고판의 검은 철판 위에 오일스틱으로 도시를 향하여 짖어대는 개를 만화처럼, 링이 울리는 전화기, 가슴이 텅텅 비어있는 현대인을 부호처럼 형상화한 선들을 재빨리 그리고 사라지면서 애써 잠복조까지 조직한 경찰의 수사망을 비웃었다. 게다가 뉴요커들의 카타르시스를 풀어주는 ‘홍길동’ 역할이 되면서 그의 낙서를 수집하려는 콜렉터까지 나타나 경찰보다 먼저 낙서를 수거해가기 때문에 골탕먹는 것은 경찰이었다.


바스키아는 오일, 아크릴릭, 오일스틱, 콜라쥬 등 닥치는대로 재료를 사용하면서 원색을 이용한 평면화로 유치하기 짝이 없는 낙서를 했는데 아프리카 토인들의 부호, 아무 관계가 없는 사람의 이름이나 시 구절을 적어놓아 인종문제를 나열한 것처럼 보이게 하여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는데 마침내 당대 팝 아트의 거장 엔디 워홀의 동성애 파트너가 되면서 일약 뉴욕 화단의 명사가 된다.

낙서처럼 나타난 낙서같은 그림은 낙서같은 인생으로 종치고 마는데 헤링은 에이즈로 32세에 삶을 마감하고 바스키아는 마약 과다복용으로 그보다 2년 전 27세로 끝장을 내고 만다. 뉴욕이 아니면 나타나지도 못했을 그 그림들은 현대인의 갈증을 어떤 류의 예술이 달래줄 것인지 의문을 남긴 사건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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