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너무 주눅 들 필요없다

2001-01-31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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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요칼럼

▶ 이 철 (주필)

불경기가 온다니까 여기저기서 걱정 섞인 소리들이 들린다.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솟뚜껑 보고도 놀란다고 지난 90년대초 겪은 경제 불황이 되살아나 ‘불경기’라는 말만 들어도 가슴 철렁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그런데 지금이 과연 불경기인가. 바꾸어 말하면 미국 경제가 이미 불경기에 진입했는가 하는 점이다. 불경기는 RECESSION이다. 미국 경제가 아직은 RECESSION은 아닌 것 같고 호경기가 SLOWDOWN(경기 후퇴)한 상태에 있다고 표현해야 할 것이다.

미국인들이 위기에 어떻게 대비하는가는 동부나 플로리다 해안에 태풍 경보가 내렸을 때 보면 알 수 있다. 관상대에서 “앞으로 이틀 후에 태풍이 이곳을 강타할 것이다”라고 발표하면 해변가의 식당이나 주택의 창문들이 베니어판으로 못 박혀진다. 그리고 집주인이 가족들을 데리고 과감히 철수한다.


우선 관상대의 발표를 믿는다. 태풍이 오지 않은 경우도 여러번 있었다. 방향을 틀어 빗겨가거나 북상도중 약화되어 결과적으로 관상대의 태풍 경보가 오보가 된 적도 있지만 이들이 관상대를 나무란 적은 거의 없다.

미국인들의 이와 같은 자세는 경제에도 연결된다. “불경기가 온다” 하면 미리 직원을 감원하고 사업확장을 준비하는등 아우성이다.

미국 사장들은 고용사장들이다. 고용사장에게 가장 무서운 것은 주식가의 폭락이다. 자기 회사 주식값이 너무 떨어지면 보너스도 없고 경우에 따라 사표까지 내야 한다. 따라서 회사의 적자운영을 미리 막기 위해 인정사정 없이 감원조치를 취한다.

지금 불경기가 닥친다고 걱정이 태산같은 회사들은 미국의 대기업들이다. 코리아타운 경기는 미국 경기와는 좀 다르다. 레이거노믹스 운운하며 미국 경제가 진통을 앓고 있던 80년대초 한인사회의 경제는 이민붐을 타고 호경기를 보였었다. 또 90년대 불경기로 미국 전체가 신음소리를 내고 있을 때 중국 커뮤니티만은 홍콩 반환을 우려한 중국인들의 돈이 몰려와 오히려 흥청흥청 호경기를 이루었었다.

불경기가 온다는 소리에 너무 주눅이 들어 있을 필요는 없다. 코리아타운의 경기는 오히려 한국의 불경기에 민감하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이번 한국의 불경기는 미국 이민 바람을 불러 일으켜 알게 모르게 한국 돈이 미주 한인사회에 쏟아져 들어오고 있다. 더구나 1월 1일부터의 외환 자유화 조치를 가뜩 기대하고 미국에 와서 비즈니스를 하겠다는 한국인들이 늘고 있다.

타운에 돈이 도는 한 불경기는 없다. 90년대에 한인들이 말할 수 없는 불경기 진통을 겪은 것은 타운에 돈이 말랐었기 때문이다. 폭동 피해입고, 웰페어 지급 중지로 영세업소들의 매상이 떨어지고, 부동산 파동으로 돈 있는 한인들이 하루 아침에 쓰러지는 최악의 사태가 벌어졌었다.

한번 홍역을 앓고 나면 면역이 생기게 마련이다. 90년대의 경제 불황을 겪은 한인들은 이제는 무리한 부동산 투자도 피하고 힘겨운 사업 확장도 조심하는 눈치다.

미국의 불경기와 한인타운의 불경기는 방정식이 좀 다르다. 한인타운은 한국의 외환자유화가 실현되면 오히려 호경기를 맞을 가능성도 있다. 미국 대기업들이 취하는 조치에 너무 겁먹을 필요는 없다. 역설적인 소리지만 코리아타운은 해마다 불경기였기 때문에 이 이상 더 불경기가 되기도 힘든 형편이다. 어느 한해 한인상인들이 “올해는 호경기였다”고 말하는 것을 들어 본 적이 없다. 한인타운에는 호경기 찾아오는 일만 남아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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