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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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 값이여, 오르지 말라”

2001-01-30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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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코노미스트

▶ 민경훈 (편집위원)

카누트 대왕은 11세기초 영국과 노르웨이, 덴마크와 스웨덴의 왕을 겸하며 북유럽을 호령했던 바이킹족의 영웅이다. 그의 위세가 하늘을 찌르자 그 밑에 간신배들이 모여들어 “대왕의 말이라면 하늘과 바다도 복종할 것입니다”라고 아첨을 했다. 카누트 대왕은 어느 날 왕좌를 바닷가에 가져다 놓게 하고 거기에 앉아 “파도여, 내 발을 적시지 말라”고 외쳤다. 왕의 말에 아랑곳하지 않고 밀물을 타고 몰려든 바닷물이 왕좌를 가라앉히자 “내가 비록 왕이지만 천지가 복종하는 것은 하나님밖에 없다는 것을 명심하라”고 말했다는 일화가 전해져 온다.

이제 대부분의 집권자는 권력으로 바다를 움직일 수 없다는 것은 알지만 아직도 자신의 힘의 한계를 깨닫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의 하나가 명령으로 물가를 잡으려는 행위다. 70년대초 하루가 다르게 물가가 치솟자 닉슨 행정부는 가격 및 임금 규제령을 내렸다. 이 행정명령이 내려지자 한동안은 효과가 있는 듯 했다. 그러나 머지 않아 부작용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물건마다 품귀 현상이 일어나 돈이 있어도 살 수가 없거나 몇 시간씩 줄을 서 기다려야 했다. 명령을 집행하는데도 어려움이 많았다. 수천, 수백만가지의 물건값을 수시로 정하는 게 힘들었을 뿐 아니라 수억명의 미국민이 어떤 물건을 얼마 주고 샀는지 모니터 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수년후 가격규제를 풀자 그동안 묶여 있었던 가격은 천정부지로 뛰기 시작했다. 닉슨의 가격 동결은 실패한 정책중 으뜸으로 꼽힌다.

가주 전력난으로 미 전역이 들썩거리고 있다. 앨런 그린스팬 연방 준비제도 이사회(FRB) 의장은 연방 의회 증언을 통해 “가주 전력난이 계속될 경우 미국 경제에 악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으며 부시 행정부도 이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방안 모색을 위해 특별 위원회를 구성키로 했다. 이번 사태로 가장 곤경에 처한 인물은 그레이 데이비스 가주지사다. 작년부터 위험 신호가 나타났는데도 아무런 대책을 세우지 않았다는 비판이 쏟아져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면 차기 대선 후보를 노리고 있는 그의 야심이 물거품이 될 수도 있다. 데이비스가 전력난 책임을 가격 자유화와 폭리를 노리는 발전업자에게 돌리는 것도 어떻게 해서든 불똥이 자기한테 튀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전력난의 원인을 가격 자유화에 돌리고 있으나 이는 사실과 다르다. 현 가주 시스템은 전기회사가 발전업체로부터 사오는 도매가는 시장 자율에 맡기고 이를 소비자들한테 파는 소매가는 정부 규제를 받는 이중체제이다. 에디슨과 퍼시픽 개스 & 일렉트릭사가 파산위기에 처한 것도 비싸게 산 후 울며 겨자 먹기로 싼값에 팔아야 해 채산성이 맞지 않기 때문이다. 소비자들은 소비자들대로 도매가가 오른 만큼의 부담을 지지 않아 전기를 아낄 생각을 하지 않는다.

가격은 신호다. 전기를 아껴 쓰라고 아무리 호소하는 것보다 가격이 올라가면 각자가 알아서 소비를 줄인다. 반면 오른 만큼 이익을 챙기려는 발전업자들이 공급을 늘려 장기적으로 다시 수급이 균형을 맞추게 된다. 정부가 개입해 가격을 동결하면 일시적으로는 효과가 있을지 몰라도 장기적으로 문제가 더 악화된다는 것은 닉슨 행정부가 이미 보여줬다. 카터와 레이건 시절 항공요금과 전화 서비스를 자율화했을 때도 초기에는 다소 혼란이 있었으나 이제 미국 소비자들은 어느 때보다 싼 항공료와 다양한 전화 서비스를 누리고 있다.

이번 전력난의 근본 원인은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데 있다. 지난 10년간 경기 호황과 컴퓨터 산업의 발달로 가주내 전기 수요는 급증했으나 발전소는 까다로운 환경 규제에 묶여 하나도 짓지 못했다. 아직도 발전소 건설 신청부터 허가가 나오기까지 보통 7~8년 걸린다.

케익을 먹거나 가지고 있거나 두가지중 하나는 할 수 있지만 둘 다 할 수는 없다는 것은 경제학의 기본 원리다. 깨끗한 환경과 싼 에너지를 동시에 가질 수는 없다. 두가지 가치중 한쪽을 완전히 포기해서도 안되지만 한쪽만 고집하는 것도 어리석다.

데이비스는 공채를 발행해 파산위기에 처한 전기회사의 채무를 대신 갚아 주고 직접 발전소를 운영하는등 전기시장에 정부가 개입함으로써 이를 해결하려 하고 있다. 이는 지난 20년간 미국이 추진해 온 자율화 추세에 역행하는 것으로 이같은 조치가 어떤 결과를 가져올 지는 불문가지다. 데이비스 지사는 카누트 대왕의 어리석음을 되풀이하지 않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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