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의 정점에서 대통령의 만류를 뿌리치고 스스로 야인으로 돌아간 로버트 라이시 전 노동부장관에 관한 기사를 읽고 자식을 둔 부모 입장에서 쉽지 않은 용단을 내린 그에게 갈채를 보냈다.
그는 물리적 안락함과 명예로는 보상받을 수 없는 소중한 그 무엇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당시 여덟살 난 아들을 통해서 깨우쳤기 때문에 오르기 힘든 고위직을 서슴없이 내놓았다.
관직에서 물러난 뒤 가족과의 오붓한 시간들을 통해서 경쟁사회 구조에서 그를 옥죄던 스트레스에서도 해방된 편안함을 몸소 체험했으며 그는 명석한 어린 아들 덕분에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걸 일찍 얻은 셈이다. 그와 비교하여 이 시대의 우리 아이들의 아버지들을 생각해 보자.
생계를 위해서,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해서 라는 명분을 내세우면서 가족보다는 일에 우선을 두고 있지만 따지고 보면, 더 멀리 내다보면 가장 소중한 걸 잃어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우선순위를 잘못 설정해 놓고 달음박질치고 있다는 얘기다.
자식들은 부모의 사랑을 필요로 하는 시기가 있다. 그들이 간절히 부모를 그리워하는 시기에 마음껏 품어주고 사랑해 줘야 한다. 그 순수한 동심의 시기가 지나가면 그들은 오히려 부모와의 밀착된 생활을 부담스러워 한다.
그땐 이미 부모보다는 친구를 좋아하고 가족과의 시간보다는 그들만의 생활, 그들만의 시간, 생각을 우선으로 한다. 애간장을 태우며 집에서 기다리는 부모의 심정을 개의치 않을 것이고 우리 부모 세대가 다소 이해하기 어려운 명분들을 내세우며 당찬 주장들을 세울 것이다.
훌쩍 커버리기 전에 좀 더 관심을 갖고 성장과정을 지켜보는 건 인생에서 상당히 중요한 일이다. 마치 예전에 육아일기를 쓸 때의 그 심정 그대로 말이다.